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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리쉬・더・그림리퍼】

この記事は【アンリーシュ・ザ・グリムリーパー】の韓国語エディションです。
◇PLUS_KR 목차

1

 개러지(garage)의 무거운 셔터를 밀어 올리고, 후지키도는 희미하게 밝아오는 황야로 나섰다. 맑은 공기 속에 서서 뱉은 숨결은 새하얗다.

 대지는 불탄 뒤의 쇠빛을 띠고 있었다.

 짙은 회색인 흐린 하늘 아래, 지평선에 검게 튀어나온 부분을 만들어내는 그림자...... 모로쿠마 시티. 저곳이 여기에서 가장 가까운 시가지이건만 실제 상당히 떨어져 있어 희미하게 보인다.

 그리고 이 개러지 주변에는 그 외의 집다운 집은 없었다. 놋쇠 풍향계, 전구도 수리되지 않은 '즉시 스톱 인(stop in)' 이라 적힌 네온 간판. 닭을 사육하고 있는 철책 울타리. 모터 구동식 우물. 그 정도 였다.

 고개를 돌리자 개러지에 쪼인 빛이 구시대의 스포츠카의 특징적인 실루엣을 도드라지게 했다. 검고 날카로운 바디와 걸윙 도어, 노려보는 것만 같은 형태의 헤드 램프. '그림리퍼'. 아직 오버홀 작업 중인 상태. 그것은 이 개러지의 소유자...... 데이비드 한의 삶의 보람이었다.

"제법 좋아졌어."

 그 데이비드가 그림리퍼 옆에 서서 쉰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조금 오른쪽 다리를 절고 있지만 보조 지팡이 없이도 걸을 수 있었다.

"네 덕분에 아주 편했다구."

"조금 더 재활치료가 필요하지는 않은가?"

 신경을 쓰는 후지키도의 시선에 데이비드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뭐, 멀쩡해."

 이 개러지에 후지키도가 체류하기로 한지 벌써 2주가 흘렀다. 처음에는 정처없는 여행자에 지나지 않았던 후지키도였으나, 오른쪽 다리에 부상을 입어 혼자 생활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이비드의 모습을 못본 체할 수 없었던 것인지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출발을 늦추고 있는 참이었다.

 그렇다. 원래 이 땅에 살고 있던 것은 데이비드 단 한명이었다. 이미 아내와는 사별. 아들은 모로쿠마 시티를 동경하여 몇년 전에 이곳을 떠난 상태였다. 그 무렵에는 아직 데이비드 외에도 드문드문 주민이 있었다. 지금에 와서는 무참하기 그지없다.

 사이버 말을 타고 이 폐촌에 온 후지키도는 "여기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이 있다." 라고만 말했다. 그렇게 말한 뒤 제시받은 가격대로 빌린 별채에서 머무르며 다리를 끌고 다니는 데이비드 대신에 우물에서 물을 퍼거나, 키우는 닭에게 먹이를 주거나 배관을 수리했다.

"벌써 며칠이나 지났지? 당신이 기다리는 사람은 오지 않을 거야."

 데이비드가 말했다. 후지키도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 남자는 상식이 통하는 사람이 아니다. 고향도 아닌 이 장소를 만날 곳으로 지정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을 터."

"대체 뭐하는 놈이야, 그 녀석은."

"내 은인이다." "은인?" "센세이다."

"영문도 모를 센세이도 다 있구만 그래."

"나도 그리 생각한다."

"하!"

 데이비드는 웃음을 터뜨리고서 아침 안개 속, 닭장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닭의 모습을 보고 만족했다.

"달걀만 먹는 것에도 질렸겠지. 오늘은 멧돼지 베이컨을 구워주마."

"그런 것도 있었나?"

"비장의 카드지. 지하에 숨겨뒀어."

"......그건 좋군."

 뒤쪽의 산이 아침 햇살에 황금색 윤곽을 빛냈다. 그 산 너머로, 과거에는 구시대의 데이터 광산 채굴이 이루어져 일확천금을 노린 자들이 모여들었다. 여기에 마을을 만든 것은 그런 이방인들이다. 하지만 그곳의 데이터 광산에는 결국 암흑 메가코퍼레이션이 기대한 수준의 질도, 양도 없었다.

 일찍이 손을 떼기로 판단하여 기업은 철수. 정착했던 자들도 예상이 어긋나게 되어 한 사람, 두 사람 이곳을 떠났다. 반대로 그 당시만 해도 적막한 시골에 불과했던 모로쿠마 시티는 신칸센 개통 등 여러 이유로 번영하기 시작했다. 빛과 그림자다.

 최종적으로 이 땅에 남은 것은 데이비드 한, 단 한 사람이 되었다.

 모로쿠마 시티에서 남쪽으로 상당히 아래에 위치한 이 장소에는 차나 사이버 말을 탄 여행객들이 종종 지나간다. 후지키도처럼 말이다. 그들의 기계를 정비해주거나 잠자리와 식량을 제공하는 것을 통해 그는 자급자족 이외의 부수입을 벌고 있었다.

 오후가 되면 데이비드는 밭에서 흙에 괭이를 휘두르고, 후지키도는 스스로 만든 목인(木人)에 춉을 때려 박는다. 그에게는 카라테의 소양이 있는 것이었다. 조금 떨어진 지점에서 그 모습을 후지키도의 사이버 말이 지켜보고 있었다. 말의 이름은 하세오라고 한다.

 해가 지기 시작하자 불길한 검은 구름이 먼 하늘을 덮었다. 먹구름의 속도는 빨랐고, 곧 강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폭풍이 올 거야. 일기예보대로군."

 데이비드는 후지키도를 불러 만들어 두었던 페이조아다*와 단단한 오믈렛, 그리고 약속대로 멧돼지 베이컨을 저녁식사 테이블에 올렸다. 유리창에 무시무시한 기세로 빗방울이 흐르고, 건물이 덜컹덜컹 흔들렸다.

* 페이조아다는 검은콩과 고기를 넣어 조리한 브라질의 대표적인 서민 요리다.

"단비로군. 빌어먹을. 아무튼 안에 있으면 안전해."

 부상에 차도가 있어서 그런지, 데이비드는 미지근한 맥주와 후지키도라는 조용한 말상대를 앞에 두고 자신도 모르게 말수가 많아졌다. 그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았던 가족 이야기까지 했다.

"아들과 마누라야."

 식탁에 장식된 사진은 찌푸린 얼굴을 한 소년과 미소를 짓는 여자.

"카일은 모로쿠마 시티로 갔어. 아리아나는 죽었고."

"아드님은 지금은 무슨 일을?"

"글쎄, 모르겠군."

 데이비드는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크게 화가 나서 말이야. 내가 내쫓은 거나 마찬가지지. 그 이후로는 소식도 없어."

"......그런가."

"뭐어, 무소식이 희소식이라지 않나. 내 도움 같은 건 필요 없겠지, 잘 해내고 있을 거야. 나도 안심하고 '그녀'를 돌볼 수 있고."

 데이비드는 그림리퍼를 언급했다.

"거의 완성된 것 같더군."

"그렇고 말고. 9할 정도는 끝났지. 틈틈이 꾸준히 하는 게 재밌어. 스스로의 손으로 조립하는 게 즐겁고. 당신, 차는 좋아하나?"

"아니, 아쉽게도 잘 모른다."

"구시대의 자동차에는 스피릿이 있지. 네모나고 쓸데없는 낭비가 많은데 그 점이 좋아. 나는 매일 IRC를 보고 쓸만한 부품을 찾지. 딱 느낌이 오는 녀석이 있으면 지르는 거야. 스스로 오버홀 하는 게 좋아. 그래서 뭐, '그녀'를 완성하게 된다면......"

 데이비드는 먼곳을 보는 눈으로 맥주를 홀짝였다.

"그 뒤에도 나는 제멋대로 계속 살 거야. 나까지 없어지면 이곳은 사라져 버리니까. 예전부터 있던 이 장소의 의미도. 가족의 기억도 말이야."

 그의 말은 자기 자신을 타이르는 것만 같았다.

"다른 곳에서 모인 놈들이 만든 마을이니까, 모조리 제로가 된다고 하면 아무 의미도 없는 맨땅이 되어버리고 말아. ......카일은 젊어. 그 녀석은 꿈을 쫓아가면 돼. 하지만 막상 꿈이 깨지는 때가 온다면 어딘가 돌아올 곳이 있어야지 않겠어."

"장소를 준비해두고 있는 건가. 아들을 위해서."

 후지키도의 물음에 데이비드는 적적한 듯 코를 킁 울렸다.

"나한테도 딱히 여기가 고향이거나 한 것도 아닌데 말이야.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나만이 여기에 남겨졌어. 여기에 계속 있을 이유를 떠올리지 않고선 살 수가 없는 거야. ......당신은 어때? 후지키도=상."

 그는 갑자기 질문했다.

"당신, 가족이 있었지? 옛날에. 그리고 잃어버렸겠지. 그럴 거야. 당신에게서는 나와 같은 냄새가 나거든. 당신도 그리 생각했을 터야."

"......"

"나에게 친절을 베푸는 건 그런 이유 때문 아닌가?"

 후지키도는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페이조아다를 씹었다. 데이비드는 상당히 취기가 돌고 있었다. 후지키도도 마찬가지였다. 마침내 데이비드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나는 이제 혼자서도 지낼 수 있어. 빨리 떠나도록 해."

"......"

 후지키도가 끄덕였다.

◆◆◆


 개러지의 무거운 셔터를 밀어 올리고, 후지키도 켄지는 아침의 황야로 나섰다. 폭풍은 밤사이에 지나가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그리고 몇 년 전 깨진 달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정말로 미안하게 됐어, 후지키도=상."

 데이비드는 말을 걸며 후지키도를 뒤따라 밖으로 나섰다.

"어제 밤에 그런 말을 한 참인데 어쩔 수가 없군. 마지막으로 이것만 부탁하기로 할게."

"그래. 대단한 일도 아니야. 내가 가면 금방 끝날 거다."

 후지키도는 사이버 말의 고삐를 당겼다. 하세오다. 데이비드는 후지키도에게 플로피디스크를 건넸다.

"이게 LAN 중계 거점의 프로토콜. 화면에 표시된 가이드대로 조작하면 될 거야. 복구는 자동이니까. 하지만 케이블이 단선된 경우에는 힘으로 해야 할 일이 필요할지도 몰라. 그럴 경우에는 무선으로 연락해주게."

"음."

 데이비드는 투박한 트랜시버를 내밀었다. 후지키도는 끄덕이며 그것을 품에 넣었다.

 지독한 폭풍의 통과로 인하여 네트워크 중계 거점이 모종의 트러블을 일으켜, 현재 이 개러지는 오프라인 상태다. 후지키도는 그 복구작업을 자청하고 나섰다.

 하세오에 걸터 앉아 절벽 위로 이어지는 길을 향해 달리는 후지키도의 모습이 작아지는 것을 보며 데이비드는 턱을 문질렀다. 중계거점은 산 위에 있어서 지금의 데이비드여서야 짐이 무겁다. 그는 어젯밤에 했던 말에 약간의 머쓱함을 느꼈다.

 데이비드는 머리를 긁적이며 개러지의 그림리퍼 쪽을 보았다. 멈췄다 진행했다, 멈췄다 진행했다를 반복해온 작업도 끝내야 할 때가 왔다. 실제 이미 그림리퍼는 달리는 것 자체는 가능했다. 어디까지 집착을 할지, 어디에서 집착을 그만둘지, 그의 마음에 달린 것이다.

"너도 달리고 싶겠지."

 데이비드는 그림리퍼의 잭을 내렸다. 그리고 도어를 열어 차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 때 입구에 '손님인' 램프가 켜졌다.

"흠......"

데이비드는 게이트를 비추는 흑백 카메라 영상을 확인했다. 그리고 숨을 삼켰다.

"진짜인가. 젠장, 진짜인가!?"

 오른쪽 다리를 어색하게 움직이며 그는 빠른 걸음으로 게이트 쪽으로 향했다.

"아버지."

 틀림없이 그곳에 서있는 것은 카일이었다. 얼굴을 보지 못한 채 세월이 흘러, 틴에이저는 이미 성인이 되었으나 데이비드가 아들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카일. 너...... 돌아온 거냐?"

"아버지......!"

 카일은 가슴이 먹먹해졌다. 데이비드는 머뭇거리며 다가갔다. 하지만 카일은 강하게 고개를 저으며 초조함을 되찾은 듯 강한 어조로 말했다.

"아버지, 도망쳐 줘!"

"도망치라고? 대체 무슨 소리야?"

"나, 어제 IRC로 연락을 하려고 했었어. 어째서 연결이 안 됐던 거야?"

"그거야 폭풍 때문에 그랬던 거지. 도망치라고? 영문도 모를 말을......"

 끼리리릭. 흙을 도려내는 타이어의 소리에 카일은 얼어붙었다. 데이비드는 카일의 어깨 너머로 달려온 야쿠자 비클이 정지하여 도어를 열고 어찌 봐도 갱들인 자들이 내리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의 팔은 똑같은 에메츠 타투가 새겨져 새까맸다. 무늬는 호쿠사이*의 파도. 그리고 그것과 똑같은 타투가 카일의 팔에도 새겨져 있는 것이었다.

* 우키요에의 대가인 가쓰시카 호쿠사이(1760-1849)를 말한다. 파도는 그가 자주 그린 소재다.


◆◆◆


 뚯뚜뚜-지잉지잉. 지잉지잉지이잉-. 낡은 UNIX가 윙윙대며 작동되고, 펀치 시트가 뿜어져 나왔다. 화면에는 토끼와 개구리가 골판지 상자를 주고 받는 영상이 흘러나오다 마침내 '정상 복귀인 : 위로 · 아래로'라는 명조체 문자가 켜졌다.

 후지키도는 자신의 휴대용 단말기를 꺼내 네트워크 상황을 확인하여, 이 중계거점이 기지국으로서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마음먹고 UNIX 덱에 키 타이핑을 하여 데이비드의 개러지에 IRC 콜을 시도했지만 응답은 없었다.

 아무튼 괜찮겠지. 후지키도는 중계거점 오두막을 단단히 잠갔다. 그러고서 품안의 트랜시버를 꺼내 주파수를 맞췄다.

"모시모시."

『......지직지직......지직......후지키도=상인가?......』

 데이비드와 연결되었다. 괴로워하는 목소리를 듣고 후지키도는 의아해했다.

"오래 기다렸군. 복구는 완료되었다. 그쪽에서 테스트를 해보게."

『지직지직지직...... 카일이...... 나는...... 콜록......』

"데이비드=상?"

 대답은 없었다. 후지키도는 결단적으로 하세오에 앉아 거친 산길의 자갈길 위를 달려 내려갔다.

 쀼이, 쀼이, 뜌뜌뜌뜌이. 나무 안쪽에서 들새들의 지저귐 소리가 들린다. 하세오를 재촉하면서 후지키도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낮의 푸른 하늘을 별똥별이 가르고 지나갔다. 후지키도는 감각의 통증을 느꼈다.

 이윽고 산길이 트였다. 그 커브는 전망이 좋아서 절벽 아래로 데이비드의 개러지를 멀리서 내려다 볼 수 있었다. 후지키도는 추락방지 가드레일에 말을 세우고 그곳을 살펴보았다.

 개러지가 불타고 있었다.

 불타는 개러지 옆에 여러 대의 야쿠자 비클이 세워져 있었다. 그 자동차들에는 야쿠자다운 위협적인 가시나 무장 기와지붕, 야쿠자 배기 파이프 같은 무시무시한 튠업의 특징들을 알아볼 수 있었다.

 갱단이 젊은이를 끌고 비클에 올라탄다. 후지키도는 눈을 움직여 땅에 엎드려 쓰러진 자를 본다. 데이비드였다. 쓰러진 그의 옆에 트랜시버가 굴러다니고 있다.

 후지키도는 곤혹스러웠다. 갑작스러운 행패. 정체 모를 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부조리스러운 느낌마저 있었다.

 야쿠자 비클은 모래먼지를 일으키며 내달려 드리프트하여 모로쿠마 시티 뱡향으로 달려간다.

"하이욧-!"

 후지키도는 하세오의 고삐를 당겨 가드레일을 뛰어넘었다. 그리고 가파른 경사면을 억지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단련된 사이버 말은 울음소리를 내며 바위에서 바위로 뛰어내렸다. 후지키도는 말 위에서 몸을 숙이고, 하세오의 목에 머리를 붙여 조금이라도 빠르게 개러지로 돌아가려 한다......!


◆◆◆


"데이비드=상. 데이비드=상! 들리는가!"

 후지키도가 몸을 흔들었지만 데이비드는 눈을 뜨지 않았다. 축 늘어진 데이비드를 안아 일으킨 후지키도의 뒤로 개러지가 타오르고, 불똥이 소용돌이 치며 밤하늘로 치솟았다. 물론 개러지 속 구시대의 스포츠카도, 데이비드의 가족사진도, 불이 모든 것을 집어 삼켜 태워버린다.

"이얏-!"

 후지키도는 힐링 춉을 데이비드의 가슴에 때려 박았다. 데이비드는 기침을 하며 의식을 되찾았다.

"후, 후지키도=상...... 당신......"

"무슨 일이 있었지?! 놈들은 누구인가!"

"아, 아아아, 아."

 데이비드는 후지키도의 어깨 너머로 타오르는 개러지를 보았다. 그리고 몸을 떨었다.

"카일. 카일이...... 카일이 납치되었다."

"뭐라고!?"

"내 아들이야. 당신을 배웅한 뒤 아들이...... 집에 돌아왔어. 하지만...... 놈들이...... 아들은 갱단에...... 콜록!"

"데이비드=상!"

"탈퇴를...... 놈들은...... 내가 카일의 가족이니까...... 하지만 카일은...... 콜록! 커헉-콜록!"

 데이비드가 경련을 일으켰다. 후지키도는 긴장했다. 그는 데이비드의 가슴에 손을 올리고 깊이 호흡했다.

"스읍-...... 하악-....... 스읍-, 하악-."

"콜록! 콜록....... ......스읍-...... 하악-......"

 후지키도의 호흡과 데이비드의 호흡이 동기화됐다. 어떠한 초자연적인 작용이 생겨난다. 괴로운 듯하던 데이비드의 호흡은 서서히 안정되어 갔다. 마침내 그는 떨리는 입술에서 말을 꺼냈다.

"이건 대체. 몸이...... 당신은......"

"치료가 필요하다...... 의료기관을 찾아야 해!"

"카일......"

 헛소리를 방불케 하듯 데이비드가 되풀이 말했다.

"안 되는 건가...... 우리는...... 우리의...... 아들...... 나의 자동차......"

"데이비드=상. 지금은 말을 하지 마라!"

"......나의......"

 데이비드는 후지키도의 손을 잡은 채 정신을 잃었다. 메마른 손에는 바이스를 방불케 하는 힘이 담겨 있었다. 후지키도는 고개를 들었다. 반쯤은 아연한 상태로 그는 불꽃에 휩싸인 개러지를 보았다. 벽이, 천장이 까맣게 타버렸다.

 그림리퍼는 변함없이, 불타지도 않고 그곳에 있었다.


◆◆◆


 모로쿠마 시티, 야메루 스트리트 상점가.

 모로쿠마는 경기가 좋지만 이 구획은 어느 가게나 셔터를 내리고 항상 휴업이다. 그 이유는 셔터에 그려진 위협적인 극채색 그래피티가 웅변하듯 말해주고 있었다.

'너를 발라 죽인다', '선택지는 하나, 그것은 죽음', '완전히 재기불능 상태로 만들어 버린다'......무시무시한 극대 야쿠자 폰트 문구와 송곳니를 드러낸 자칼, 머리가 없는 스모토리라고 하는 무시무시한 모티프.

 LED 두발이나 사이버네틱스, 네온 타투, 블랙 메탈 티셔츠를 뽐내는 젊은이들이 셔터에 기대어 앉아 만엔권과 주사바늘, 알약을 주고받고 있다.

 어깨로 바람을 가르며 걷는 이들은 대개 양팔에 빽빽하게 검은 호쿠사이 파도 에메츠 타투를 새긴 자들로, 젊은이들은 그들이 지나갈 때는 퇴폐적인 대화를 멈추고 눈짓으로 지켜보기만 한다.

 DOOOM...... DOOOM...... DOOOM...... 리드미컬한 울림이 희미하게 이 스트리트에 깔려 있다. 그것은 이 근처에서 유일하게 영업중인 지하 클럽 '요멸(要滅)'에서 밖으로 새어나오는 EDM의 비트였다. 그 리듬을 흐트러뜨리듯 격렬한 드리프트 소리가 끼어든다. 끼리리리리릭!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셔터에 차체 측면을 긁어먹어 불꽃을 일으키며 달려온 것은 날카로운 바디를 가진 구시대의 스포츠카였다. 차는 지하 클럽 '요멸' 앞에서 급브레이크를 걸고 멈춰섰다. 

"뭐야?" "골동품?" "가솔린 차?"

 젊은이들이 소곤소곤 말을 주고받으며 지켜보는 가운데, 유리에 스모크가 낀 운전석 도어가 세로로 열리며 남자가 내렸다. 트렌치 코트에 헌팅캡. 이 자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남자였다. 그는 '요멸'이라는 가게 이름 네온사인을 보았다.

"이히히! 터프한 아재!"

 약물 하이(high) 상태인 모히칸 청년이 무모하게 말을 걸었다. 남자는 모히칸 청년의 어깨에 손을 얹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모히칸 청년은 즉시 실금하며 무릎을 꿇었다.

"자동차를 살펴주게."

"하이......"

 모히칸 청년은 후지키도의 말을 따랐다. 남자는 '요멸'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


 DOOOM! DOOOM! DOOOM! DOOOM!

 아랫배를 떨리게 하는 EDM 중저음이 문 너머로 들리는 VIP룸은 형광 보라색을 기본으로 한 댄스 플로어와는 달리 부르봉 왕조 스타일인 기묘한 내부 인테리어가 되어 있었다. 본디지를 몸에 감은 사이버 보이들은 장식물처럼 똑같은 간격을 두고 서있었다.

"요사마이카베-!" "얀챠다요!"

 게이밍 모니터에서는 시리즈물 게임 '장절한 싸움꾼들'의 격투 캐릭터들이 발하는 기괴한 소리가 들려온다.

"껄껄껄껄껄!"

 게이밍 컨트롤러를 조작하는 금발 장발 갱 에디는 화면 형광등 불빛을 쬐며 소리 높여 웃었다. 대전 상대인 쵼마게* 갱 조에몬은 이것으로 6연패. 점점 그 찡그린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쵼마게는 일본식 상투를 말한다.

 그들 두 사람은 이 VIP룸에 있는 자들 중에서도 리더격인 인물이었다. 그 밖에 몇 명이 소파에서 핫파(대마)를 피우거나 갱 그루피* 오이란을 만지작대기도 했지만, 그들은 몇 초에 한 번씩 두려워하는 눈으로 게이밍을 하는 두 사람을 보며 기분이 상하지 않았는지 체크하고 있었다.

* groupie, 특정 그룹을 쫓아다니는 열성적인 여성팬을 이르는 말이다.

"무으읏-......"

"너 너무 약하다고! 껄껄껄!"

"무으으으읏-!"

 조에몬은 컨트롤러를 들어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무읏! 무읏! 무읏!"

 꽝! 꽝! 꽝! 꽝! 꽝!

"껄껄껄껄껄!"

 꽝! 꽝! 꽝! 꽝! 꽝!

"이젠 싫어!"

 조에몬이 게이밍 컨트롤러의 케이블을 뽑아내며 일어섰다. 분노와 함께 고개를 돌려 눈이 마주친 갱 마타로가 떨고 있는 모습을 보고선,

"웃는 건 싫어!"

 앞뒤 가리지 않고 컨트롤러로 후려쳤다.

"아이에에에!"

 정수리를 맞은 갱 마타로는 머리를 누르며 쓰러졌다. 울부짖으며 얼굴을 움직이자,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던 '먼저 온 손님'과 눈이 마주친다. 잔뜩 얻어터져 부어오른 얼굴, 부은 눈썹 아래에서 멍해진 눈이 살짝 움직였다.

 그 녀석은 패밀리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끌려 와 제재를 받은 말단이었다. 이름은 카일.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마타로도 이 카일을 다른 무리들과 함께 하이 텐션으로 괴롭히면서 즐기고 있었다.

"아이에에에에!"

"싫어! 싫어!"

 조에몬은 마타로의 옆구리를 반복해서 걷어찼다.

"오고곡-!"

 마타로는 구토와 경련을 일으켰다. 그것을 보며 금발 장발 갱 에디는 점점 더 웃고, 조에몬의 분노는 부풀어 올랐다. 마타로는 피를 토하기 시작했지만 이 돌발적인 폭력을 멈출 자는 없었다. 공포와 함께 지켜볼 따름이다.

"......앙?"

 에디가 그 순간 눈을 들었다. 시선은 VIP 룸 입구의 문으로 향해 있었다. 문이 천천히 열리고 낯선 남자가 들어온다. 도무지 이 클럽에 어울리지 않는 트렌치 코트에 헌팅캡 차림을 한 남자였다.

 일동이 조용해진다. 조에몬도 발차기를 멈추고 남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에디는 한숨을 돌린 뒤 나무랐다.

"누구야, 아재. 룸 서비스? 약은 좀 전에 받은 참인데?"

"스미마셍. 아닙니다."

"칫."

 에디는 혀를 차고 망을 보고 있던 보안요원 이야기를 꺼냈다.

"닐슨은 퍼킹 쓰레기 얼간이인가? 뭘 통과를 시키고 앉았어, 이런 얼빠진 아재를. 텐션 떨어지게시리......"

 조에몬은 악문 이빨 사이로 거품을 흘리며 금방이라도 덮칠 기색이었다. 헌팅캡을 쓴 남자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낮게 말했다.

"이쪽에 계신 에디=상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에디는 나다만?"

 헌팅캡을 쓴 남자는 크리스탈 유리 테이블 옆, 바닥 위에 굴러다니고 있는 카일을 보았다. 그리고 시선을 돌렸다.

"저는 후지키도 켄지라 합니다. 카일=상을 데리러 왔습니다."

2

 크리스탈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에디와 후지키도의 시선이 충돌한다. 갱들은 진땀을 흘리며 후지키도를 비웃는 눈으로 관찰하고, 조에몬은 공격성을 폭발 직전에 억누르듯 거친 숨결을 내쉬며 호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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