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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트・필드・위드・리그렛・앤드・오하기】

이 소설은 Twitter 연재시 로그를 그대로 보관한 것으로 오탈자 등의 수정은 기본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이 에피소드의 가필수정판은 상기 링크에서 구입할 수 있는 물리서적 / 전자서적 ‘닌자 슬레이어 네오 사이타마 염상 1’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코미컬라이즈판은 KADOKAWA 무인판 11권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この記事は【フィスト・フィルド・ウィズ・リグレット・アンド・オハギ】の韓国語エディション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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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자 슬레이어 제1부 '네오 사이타마 염상'에서


[피스트 필드 위드 리그렛 앤드 오하기]


1

 토미모토 스트리트, 22시.

 중금속을 함유한 산성비가 내리는 밤의 싸구려 여인숙 거리, 깜빡이는 거대한 '타케노코(죽순)'라는 네온 글자의 황록색 조명을 받으며 걸어가는 남자의 모습이 있었다.

 낡아 빠진 방진 트렌치 코트는 군데군데가 마모되었으며, 눈까지 눌러 쓴 털모자도 벌레 먹은 자국 투성이다. 남자는 한쪽 다리를 질질 끌면서, 불안한 발걸음으로 웅덩이물을 튀기며 걸어간다.

 이런 시간대에 부랑자가 혼자 돌아다니는 일 따윈 반드시 피해야만 한다. 보라, 남자의 3미터 뒤쪽을. 쇠파이프를 든 2명의 무장 횻토코가 조금씩 거리를 좁히며 남자의 뒤를 따라가고 있다.

 횻토코란 센터 시험(한국의 수능)이라 불리는 가혹한 선발시험에서 탈락하여 집에서 쫓겨난 10대 재수생으로 편성된 거대한 스트리트 갱 클랜이다. 이 토미모토 스트리트도 기괴한 마스크를 쓴 그들의 손아귀에 놓여 있었다.

 그들에게는 규칙도 양심도 없다. 특히 부랑자 사냥은 그들 사이에서 가장 핫한 스포츠다. 일몰부터 일출까지 부랑자들은 멀리 떨어진 센베이 스테이션 주변에서 시간을 죽이거나, 있는 돈 없는 돈 털어내서 애니메이션 카페에 피난할 수 밖에 없다. 이 남자는 누구나 아는 그 규칙을 잊어버린 것인가?

 왼쪽 횻토코가 오른쪽 횻토코의 어깨를 짚고, 자신의 쇠파이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웃었다. 나무삼, 그 끝에는 전동 드릴이 묶여서 고정되어 있었다. 오른쪽 횻토코는 그에 응해 주머니에서 왼손을 꺼내서 보여주었다. 쥐고 있던 것은 권총이었다. "힛히히!" 두 사람은 웃겨서 참을 수가 없다는 듯 소리를 흘리며 웃었다.

 뒤틀린 전봇대 그늘까지 남자가 걸어갔을 때, 횻토코는 갑자기 남자에게 권총을 발포했다. 메마른 총성이 공기를 진동시키고, 남자는 놀라 몸을 웅크리며 쭈그려 앉았다. 겨냥이 빗나간 것 같지만 그런 것은 개의치 않는다. 두 횻토코는 폭소하면서 남자를 둘러쌌다.

"햣하아-!" 전동 드릴을 든 횻토코가 남자의 등을 걷어찼다. "아이에-!" 남자는 한심한 비명을 지르며 진흙탕에 쳐박혔다.

"드릴로 해버려! 드릴로오!" 권총 횻토코가 소리친다. "짤깍!" 반쯤 망가진 전동 드릴의 스위치를 킨다. 위험한 모터 소리가 울려퍼지며, 회전하는 드릴 끝이 남자의 눈알 앞에 들이밀어진다. "아이에-에에에에!" 남자는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권총 횻토코가 뒤에서 그에게 날개죽지 조르기를 걸어버렸다.

"대단한걸! 대단해!" 웃으면서 횻토코는 드릴을 남자의 안구로 점점 더 들이밀었다. 나무아미타불! 그러나 이 지옥도는 네오 사이타마 스트리트에 있어서 흔하기 짝이 없는 '다반 인시던트'*인 것이다!
*일상다반사의 인살어 표현.

"그 정도로 해두지, 애송이들." 도로 반대쪽 전봇대 뒤에서 다른 남자가 슬쩍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에-에에에에!" 부랑자는 보다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횻토코들은 새롭게 나타난 그림자 쪽을 노려보았다.

 그 남자 또한 낡아빠진 차림새를 하고 있긴 했다. 그러나 너덜너덜한 방진 트렌치 코트 아래의 육체는 달랐다. 탄탄하고도 꽉 짜인 근육이 솟은 어깨와 두꺼운 목이 만들어내는 사각형 실루엣은 이 남자가 지금 흙탕물 속에서 떨고 있는 부랑자와는 다른 종류의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햣하아-! 한 마리 늘었는걸!" "더블 스코어다!" 횻토코는 폭소하면서 쇠파이프를 치켜 들었다. "아이에-에에에에!" 물웅덩이에서 부랑자가 소리친다. 두 개의 쇠파이프가 갑자기 나타난 남자에게 내리쳐진다!

 어둠 속에서 울리는 둔탁한 소리. '타케노코' 네온사인이 파직파직 빛난다. 튼튼한 남자는 쇠파이프 공격을 받고서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파이프 끝에 달아놓은 드릴이 허무하게 허공만을 파고든다. "어라아? 이상한데?" "시험에는 안 나와!" 횻토코들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남자의 어깨를 분쇄했어야 할 쇠파이프는 마치 사탕으로 만든 것처럼 남자의 어깨 윤곽을 따라 흐물흐물 휘어 있었다. 어두운 밤에 남자의 날카로운 눈빛이 빛난다.

 부르르, 하고 남자의 어깨가 떨리는 것 같았다. "이얏-!" 두웅, 하고 징을 울리는 것 같은 파열음이 터져 나온다. 전동 드릴 횻토코가 사라졌다. 남자는 주먹을 똑바로 뻗어낸 채 올곧게 서 있었다. "에?" 다른 횻토코가 골목을 두리번 두리번 둘러보았다.

"아이에-에에에에!" 부랑자가 비스듬히 머리 위를 가리켰다. '타케노코' 중 '케' 부분 조명이 사라져 있었다. 횻토코가 그쪽으로 눈을 돌렸다. '케'가 있던 공간에는 대신에 '대(大)'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글자가 바뀐 건가?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저것은 글자가 아니다! 사지를 펼쳐 큰 대자 모양으로 뻗은 사람 모양으로, 간판에 뚫린 구멍이다!

'활력 바리키' 드링크 과잉 복용으로 극도의 흥분상태에 놓여있던 횻토코도 어슴푸레 상황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파트너는 이 남자의 맨손 펀치를 맞아서, 비스듬하게 날아가, 저기에 있는 간판에 파묻혀 장식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알기 쉽다. "히...... 히히-!" 횻토코는 실금했다.

"아이에에에에에!" 부랑자가 소리쳤다. 남자는 횻토코의 손에서 권총을 집어들더니, 루빅큐브를 맞추듯 편안한 손놀림으로 앗할 사이에 분해해 버렸다. "아직 더 할건가, 횻토코=상?" 남자가 으름장을 놓는다. "히히-!" 횻토코는 실금하면서 도망치는 토끼처럼 도주했다.

 남자는 부랑자의 어깨를 부축하여 일으켜 세웠다. "이제 괜찮아, 손님." "댁, 뭐하는 사람이야?" 예를 표하는 것조차 잊고 부랑자가 질문했다. "요짐보(보디가드)야, 손님." 남자가 낮게 말했다. "이런 시간에 어슬렁대다니, 다른 곳에서 온건가, 손님은?" 부랑자가 끄덕였다. "배식이 매일 나온다고 들어서..."

 남자가 껄껄 소리를 내며 웃었다. "아, 하하, 하하! 그런 끝내주는 경우, 네오 사이타마 어디에도 없다고, 손님!" "아이에에...." 부랑자는 씁슬하게 고개를 떨구었다.

"조금 전 그 꼬맹이들, 그건 횻토코 클랜이라고 해서 살인을 좋아하는 자들의 모임이야. 배식 소문도 놈들이 흘린 거겠지. 이 지역의 인간들은 놈들의 인간 사냥을 경계하게 되었으니까. 다른 곳에서 얼빠진 사냥감을 조달하려 한거야." 남자가 걷기 시작했다. "따라와, 손님. 잘 곳 정도라면 있어."

 값싼 여인숙 거리의 싸구려 모텔은 대부분 불도 키지 않은 채, 문을 잠그고서 정적에 쌓여 있었다. 강도 대책이다. 두 번째 사거리에서 요짐보는 멈춰 섰다. 땅의 맨홀 뚜껑을 열어서 부랑자에게 내려가라는 듯 재촉한다. "가지, 손님." 부랑자는 끄덕이고서 사다리에 발을 걸려고 했다.

 그때였다. 부랑자를 지켜보던 요짐보가 갑자기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땅에 두 무릎을 꿇었다. "왜 그래! 몸상태가 나쁜거야?!" 부랑자는 생명의 은인을 걱정하면서 등을 문질러 주려고 했다. "젠장 또 이러는구만! 위험해, 오하기*, 오하기......" "나으리?" "다가오지 마! 가!" 남자는 부랑자의 손을 뿌리쳤다.


*팥으로 만든 일본 찰떡 같은 것으로, 인살 세계에서는 강력한 중독성을 가진 것으로 묘사된다.

 남자는 떨리는 손으로 코트 여기저기에 달린 주머니를 필사적으로 뒤졌다. "젠장, 오하기! 오하기, 있었을 텐데...... 위험해......" 남자는 튀어나올 것 처럼 눈을 부릅뜨고, 악 문 이빨 사이로는 거품을 물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떻게든 목적이었던 물건을 찾아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밀폐용기다.

"열어 줘! 빨리! 내용물을 꺼내줘, 젠장!" 남자는 분노한 얼굴로 부랑자를 노려보았다. 부랑자는 황급히 밀폐용기의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자주색 동그란 덩어리가 여섯개 들어있었다. "하나 줘! 하나면 되니까! 빨리!" "바로 꺼낼게! 있어보쇼, 좀!" 부랑자가 덩어리 중 하나를 꺼내어 남자의 입에 밀어 넣었다.

 갑자기 남자의 떨림이 가라앉고, 황홀할 정도의 취기가 남자에게 찾아온 것 같았다. "아아-, 달다, 우물, 우물......" 잠시 남자는 부랑자에 대한 것도 잊어버리고 쾌락의 파도 속에 빠져 있었다. "나으리......?" "아아...... 미안하군. 여러 사정이 있는 법이잖아, 남자에겐. 이해하지?"

 자아를 되찾은 남자는 조금 나쁜 짓 했다는 것처럼 대답했다. "자, 기분을 바꿔서 내려가 볼까, 손님." "아이에에...." 부랑자가 아래를 향해 파인 구멍 밑까지 내려가는 것을 본 뒤, 남자 또한 지하로 몸을 던졌다.



2

 눈을 찌르는 것만 같은 암모니아 냄새가 가득한 수로를 왼쪽에 두고 똑바로 나아간지 몇 분. 두 사람은 녹슨 철문 앞에 섰다. 문에는 그윽한 글씨로 '이 앞입니다' 라고 적혀 있다. 어딘가 다른 곳에 있었던 것을 가져온 것일까.

"여기야, 손님. 다들 좋은 녀석들이야. 잠시 머물러도 좋아." 남자는 삐걱거리는 문을 밀어 열고 부랑자를 안으로 재촉했다. 오렌지색 빛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는 『캠프』야. 그래서, 내가 이곳의 요짐보를 맡고 있다는 거지"

 창고나 뭐 그런 걸 사용해서 마련한 장소일까. 천장은 높고, 어디서 끌어온 것인지 몰라도 여기 저기에 놓인 전기 본보리 램프가 충분한 빛을 제공하고 있었다. 제각각 설치된 누덕누덕 기운 텐트, 골판지 하우스. "촌장에게 소개해 주지. 따라와, 손님."

 두 사람은 가장 안쪽에 있는 물소 가죽으로 만든 텐트의 노렌(포렴)을 통과했다. 그 안에는 사이버네틱스 의수를 달고 있는 뚱뚱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 남자가 노인에게 오지기했다. "도-모, 타지모=상. 한 명, 위에서 곤란해 하고 있던 녀석을 데려왔어." 노인은 앉은 채로 두 손을 맞댔다. "도-모, 와타나베=상. 오늘은 묘한 날이군."

"묘한 날?" "음." 타지모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어, 그건 나중에 이야기 하지. 댁, 이름은?" "도-모, 저는 노리타 이가키입니다. 탓코우 스트리트에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부랑자가 조심스레 아이사츠했다. "그거 참 긴 여행이었겠군. 바깥의 『R4』 텐트가 비어있네. 괜찮다면 거기를 쓰시게."

"괘, 괜찮을까요?" 부랑자는 울기 시작했다. 노인이 히죽 웃었다. "일기일회라는 가르침에 따른 것 뿐일세. 계속 여기에 살고 싶다면 일을 해야겠지만 말이야. 여기서는 다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네. 서로 돕는 것을 통해 이루어진 코뮨(집단)인게지. 와타나베=상은 이곳의 요짐보야. 분쟁을 해결해 줄걸세."

"아이에에...... 저, 열심히 하겠습니다...... 반드시 열심히 하겠습니다......" 부랑자는 울면서 노인의 의수를 움켜쥐고, 다시 한번 깊이 오지기하고서 휘청거리며 텐트 밖으로 나섰다. 와타나베는 그것을 지켜본 후 입을 열었다. "뭐어, 잘 돌봐줘. ......그래서, 묘한 일이란?"

 타지모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나간 사이에 또 한 명이 여기로 운반되었네. 오늘은 이걸로 2명인게지. 별난 일이지 않나?" "호오, 그거 참!" 와타나베는 놀란 듯 했다. "어떤 녀석이죠?" 노인은 텐트 출입구를 의수로 가리켰다.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지."

 와타나베가 고개를 돌렸다. 출입구에 키가 큰 남자가 서있었다. 상반신은 알몸으로, 피로 얼룩진 붕대를 무명 천처럼 감고 있었다. 어깻죽지와 가슴 근처에는 큰 얼룩이 있다. 그 부분의 출혈이 심각했던 것 같다. 와타나베는 이 남자의 시선에서 방심할 수 없는 무시무시함, 절망 같은 그림자를 감지했다.

"도-모, 처음 뵙겠습니다. 사카키 와타나베입니다." 와타나베가 먼저 아이사츠했다. 남자도 오지기했다. "도-모, 와타나베=상. 이치로 모리타입니다." 가명이군. 와타나베는 간파했다. 뭐어, 됐어. "엄청난 상처로군." "타지모=상 덕분에 큰 불상사는 면할 수 있었습니다." 이치로는 타지모에게 오지기했다.

"모리타=상은 바로 저 하수도 근처에 쓰러져 있었네. 오늘 아침의 일이야. 의식을 잃고 지극히 위험한 상태였지만, 론 센세이의 응급처치로 숨이 돌아왔지. 무서울 정도의 생명력이라고 센세이도 놀랐어." 론 센세이는 전(前) 뒷골목 클리닉 의사로, 와타나베와 함께 이 캠프의 생명줄이라고 해도 좋을 존재였다. "흐음."

"론 센세이가 말하길 그래도 만족스럽게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일주일은 걸릴 거라고 하더군. 우리들이 잠시 머무르도록 모리타=상에게 말한 참인데......"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이치로 모리타가 끼어들었다. "시간이 없습니다. 정말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만, 이 이상 민폐를 끼칠수는..."

 멈추지 않고 말하려던 모리타가 고통으로 신음했다. "그것 좀 보라지. 와타나베=상, 댁도 일러두시게." 타지모 노인이 난감한 표정으로 와타나베를 보았다. 심상치 않군, 이라고 와타나베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사정은 어쨌든 서두르면 일을 망친다, 라는 코토와자도 있다구. 모리타=상."

"......" "서두르고 있는 이유를 알려주면 뭐라도 도울 수 있을지도 몰라." 와타나베가 말했다. 모리타는 심각한 얼굴로 와타나베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허리를 숙였다.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행방불명이 되어서요." "가족인가?" 가족, 그 말이 귀에 들렸을 때 어떠한 감정이 모리타의 얼굴에 잔물결처럼 흘러 지나갔다.

"......그렇습니다." 모리타가 단어를 토해내듯 말했다. 와타나베가 중얼거렸다. "가족인가. ......가족은 좋지." 그러고서 정신을 차린듯 모리타에게 말했다. "모리타=상. 우선 잘 곳이 없겠지? 내 텐트를 쓰게. 일단은 밥이라도 먹지 않겠나, 『손님』."


3

 쇠가죽과 비닐을 복잡하게 꿰매고, 그 위에 기왓장을 아교로 붙여서 보강한 와타나베의 텐트는 이 정도면 훌륭한 집이라고 할 만했다. "어쨌든 지하라서 비 걱정은 안해도 되는게 좋지." 와타나베가 노렌을 걷고 모리타를 맞아들였다.

 텐트 안은 겉으로 본 것보다 놀라웠다. 2단식 침대, 수북하게 쌓인 책들, 마키모노 스크롤들. 와타나베는 아이스 박스에서 사이타마 쉬림프 비어캔을 2개 꺼내 하나를 모리타에게 건넸다. 모리타는 거절하려 했지만 결국에는 받아들었다.

"자아, 앉게. 모리타=상. 자고 싶어지면 위쪽 침대를 써." "도-모." 모리타가 끄덕였다. 와타나베는 씨익 웃었다. "서로의 가족에게 간빠이다." 쉬림프 비어를 캔째로 마시며 모리타는 텐트 곳곳에 붙어있는 빛바랜 사진을 보았다.

 사진에 찍힌 것은 이것도 저것도 같은 사람이었다. 기모노를 입은 아름다운 여자, 그리고 네 살쯤 되는 아이. "내 가족이야. 아내의 이름은 미마요. 딸의 이름은 오하나." 와타나베가 맥주를 들이켰다. "둘은 지금 롯폰기에 살고 있어. 새 남편과 함께. ......잘 된 일이지."

 모리타는 와타나베의 말에 끼어들지 않고 그저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나는 가족을 돌보지 않았어. 형사로서 네오 사이타마를 지킨다, 그것이 내 의무라고 굳게 믿고 있었지. 야쿠자를 카라테로 후려패는 이 손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것들이 흘러나간거야. 많은 것들이." 와타나베는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떨고 있었다.

 와타나베는 밀폐 용기에서 오하기를 꺼내 우걱우걱 먹었다. 와타나베의 눈에 희미한 그늘이 졌다. "오하기를 끊을 수가 없어...... 한심한 일이지? 싸우는 것에 몰두하며 오하기로 피로를 얼버무렸지. 아내가 딸을 데리고 나갔다는 것을 안 것도 1주일이나 지나서였어."

"아내의 재혼 상대는 당시의 내 부하야. 하지만...... 그 녀석이라면 나같은 쓰레기와는 달리 행복한 가정을 꾸릴 거야. 나는 결국 형사일도 그만두고 탐정이 되었다가, 마지막엔 여기에 이르렀지. 요짐보(보디가드) 말이야. 이것도 저것도 잃어버렸어. 나는 대체 뭘 위해서 싸워온 걸까?" 와타나베는 두 번째 맥주캔을 땄다.

"네오 사이타마를 지키기 위해서." 모리타가 말했다. "그렇지 않나? 와타나베=상. 그리고 지금은 이 캠프를 지키고 있지. 훌륭한 일이다." 와타나베는 놀란 얼굴을 하고서 눈을 깜빡이며 모리타를 쳐다 보았다. 와타나베는 떨고 있었다. 오하기 중독 증상이 아니라, 눈물을 억누르느라 떨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저 만나는 녀석들에게 매번 이런 이야기를 해서 동정을 사고 싶어할 뿐이야, 모리타=상. 한심한 남자지. 하지만......" 와타나베는 눈시울을 억눌렀다. "다음 달은 딸의 생일이야. 만나기로 되어있지. 그게 내 버팀목이야. ......자네도, 찾을 수 있으면 좋겠군, 그......" "이름은, 유카노다."

 모리타가 조용히 대답했다. "나의 센세이의 유족으로, 18세가 된 참이다. 피가 이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지금은 나뿐이다. 센세이는 돌아가셨네." "행방불명이라...... 걱정되겠군." 와타나베가 말했다.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네트워크가 없는 것은 아니야. 소문을 모아보지. 자네가 여기서 떠날 때까지 힘을 빌려주겠네."

 와타나베가 모리타와 악수하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모리타는 악수에 응했다. "가족은 좋아, 모리타=상." 와타나베의 말은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말 같았다.

 ......다음 날 일몰. 탐문을 마치고 스모 바 '챠부(밥상)'를 뒤로 한 와타나베는 자신을 따라오는 발소리를 깨달았다. 이치로 모리타? 아니다. 질질 끄는 것 같은 연약한 발소리다.

 스모 바 '챠부'의 바텐더, 마이니치=상은 토미모토 스트리트 뿐만 아니라 네오 사이타마 주요 번화가에 정보 커넥션망을 뻗고 있는 수완가다. 그는 와타나베에게 고개를 들지 못하는 입장이었다. 와타나베는 그에게 유카노의 특징을 전했다. 마이니치=상의 수완은 확실하다. 사흘 정도 지나면 뭐라도 목격 정보가 들어올 것이다.

 와타나베는 조심스럽게 스트리트의 모퉁이를 돌았다. 횻토코 클랜의 복수? 아니다. 놈들은 병적으로 햇빛을 두려워한다. 설령 흐린 날이라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그들이 신봉하는 종교와 관계가 있을 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횻토코는 절대 혼자 행동하는 일이 없다.

 몇 번이나 뒷골목을 골라 들어가며 확인한 결과, 발소리가 와타나베를 따라오고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와타나베는 복잡하게 생각하기를 그만두었다. 어차피 와타나베의 카라테에 이길 이는 없다. 와타나베는 멈춰 서서 말했다. "무슨 용무지?"

"아이에에......!" "당신은!" 와타나베가 고개를 돌렸다. 좁은 골목, 서있던 것은 그가 도와줬던 부랑자였다. "틀림없이, 이름이...... 노리타=상?" "도-모. 와타나베=상. 아니. 인터럽터=상." 부랑자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입을 열었다. 탁한 눈이 와타나베를 응시한다. 와타나베가 신음했다.

"어떻게 된 거지? 어째서 그 이름을 알고 있나! 노리타=상!" 와타나베가 소리쳤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저는......" 부랑자의 목이 부들부들 기분 나쁘게 떨린다. "저어, 는, 워록, 입니다. 인터럽터=상. 이 사람, 의, 몸을, 빌렸, 습니다."

"뭐라고......" 와타나베가 자세를 취했다. 부랑자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튜닝, 이, 제법, 하아아아아, 아아, 이제 괜찮습니다. 인터럽터=상." 경련이 멈추자 수척한 얼굴에 다른 사람인 것 같은 무시무시함이 깃들어 있었다. "만나뵈어 영광입니다, 인터럽터=상."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마라. 카라테를 때려 박겠다." "카라테! 그 타타미 켄(다다미권) 말이죠. 보고 있었고 말구요, 이 눈으로! 횻토코를 책형당하는 꼴로 만들어버리는! 정말 잔혹한 기술이더군요. 당신의 주먹은 녹슬지 않았습니다. 보스도 기뻐하실 겁니다." 부랑자...... 워록이라고 자칭한 정체불명의 존재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소우카이 신디케이트! 나와 상관마라!" 와타나베는 분노했다. 나무아미타불! 와타나베는 틀림없이 소우카이야라는 이름을 입에 올렸다. 그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한편 워록은 와타나베의 분노에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제가 신디케이트의 식스 게이츠에 들어간 것은 얼마 전입니다, 인터럽터=상. ......그래서 말씀드리자면, 결원이 대량으로 발생해서 말이죠. 그 코카트리스도 쓰러졌습니다. 그야말로 비상사태입니다, 인터럽터=상." "코카트리스가!?" 와타나베는 반사적으로 앵무새처럼 말을 따라했다.

 워록은 연극이라도 하는 것 같은 몸짓으로 검지 손가락을 세웠다. "당신이 건재하셨던 시절의 식스 게이츠 닌자는 거의 살해되었습니다. 다크닌자=상조차 역부족으로, 식물인간 상태가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한 사람의 인간이 그것을 해낸 것입니다, 고작 한 사람의 인간이!"

"바카같은-!" 와타나베가 외쳤다. "다크닌자=상이 쓰러졌다니...... 누구냐, 그 테러리스트는?" 워록이 킥킥 웃었다. "이치로 모리타=상입니다, 당신과 사이 좋은 착한 청년 말이죠." 와타나베는 큰 타격을 입은 것처럼 뒷걸음질 쳤다.

"그건 가명이겠지만, 진짜 이름은 저희도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그저 『닌자 슬레이어』라고 자칭하고 있습니다." 툭, 툭하고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곧 쏟아지기 시작했다. 워록이 말을 이어갔다. "저는 당신이 생존했음을 알고 이렇게 스카우트를 하러 온 것입니다. 그런데 설마 거기에 닌자 슬레이어가......"

"놈을 죽이라는 것인가, 워록=상?" 와타나베가 신음했다. 워록이 깊이 오지기했다. "보스는 당신을 식스 게이츠로 다시 부르신 후, 닌자 슬레이어를 테우치(원문 역주 : 암살한다는 뜻)하라고 명령하실 생각이었습니다. 단숨에 그 일을 마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아부하치토라즈(일거양득)입니다."

"하지만...... 나는 신디케이트에서 빠져나온 인간이다......" 와타나베는 말을 입에서 끄집어 냈다. 워록이 끄덕였다. "그에 따른 벌까지 백지화하며 맞아들이려 하시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관대하신 보스의 마음 씀씀이!" 워록이 히죽히죽 웃었다.

"게다가 말씀드리기 좀 그렇지만, 인터럽터=상, 당신 자신은 지금 바라던 바가 아닌 삶을 통해 자신의 진짜 살아갈 길을 그 몸으로 분명히 실감하고 계신 것 아닌지?" 워록이 와타나베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식스 게이츠 최강의 닌자, 타타미 켄 사용자, 그런 분이 요짐보 따위라니......!"

"말하지 마라!" 와타나베가 가로막았다. 그러나 워록은 말을 이어간다. "게다가 당신에게 있어서 정말로 기쁜 소식이 준비되어 있답니다. ......오하기, 맛있으신지요? 인터럽터=상." "네 이놈......!" "너무나 미우면서도 사랑스러운, 새까만 단맛......" "그만해!" "혈중 팥앙금을 클리닝 해드리겠습니다."

"뭐라고?" 와타나베가 순간 멍해졌다.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어." "리 센세이의 연구소라면 그것도 간단합니다. 당신이 있던 시절과는 다르답니다, 여러가지로." 워록이 말했다. "혈액을 교체하여 체내세포를...... 뭐어, 저는 잘 모릅니다만. 리 센세이에게 직접 들어보시는게 어떨지?" 와타나베는 침묵했다.

 긴 침묵이었다. 두 사람은 중금속이 함유된 폭우를 맞고 있었다. 마침내 와타나베가 입을 열었다. "......약속을 지켜라, 워록=상." "호호호! 저는 전령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거짓말은 드리지 않았습니다. 이걸로 제 목도 붙어 있을 수 있겠군요. 닌자 슬레이어의 목,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말이 끝나자 워록이었던 부랑자는 갑자기 의식을 잃고 실이 끊어진 죠루리처럼 (원문 역주 : 꼭두각시 죠루리인가?) 아스팔트 위로 엎드려 쓰러졌다. 와타나베는 움켜쥔 자신의 주먹을 바라보았다. 그 무서운 눈빛은 살의로 새빨갛게 타오르는 것만 같았다.

 ...... 같은 시각.

 토미토리 스트리트 중심, 거대 게임 센터 '영 오모시로이' 폐허 안에서는 지금 그야말로 위험한 종교적 의식이 한창이었다.

"킹!" "킹!" "킹!" 일몰을 맞이하여 새까맣게 어두워진 '영 오모시로이'의 중앙 홀에 반라인 남자들이 한목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센터 시험에서 실패하여 돌아갈 집을 잃어버린 10대 젊은이들이었다.

'킹'을 부르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중앙에 놓인 제단의 본보리 램프에 불이 켜졌다. 불꽃이 거대한 사람의 그림자를 비추자, 킹을 부르던 소리는 찢어질 듯한 함성으로 바뀌었다. 그림자는 양손을 높이 들어올려 그것에 대답했다. "약속의 아이들이여! 오늘 밤도 때가 되었다. 오멘(가면)을 써라!" 환호성. 소년들은 서로 경쟁하듯 횻토코 가면을 뒤집어 썼다.

"우리들은 자유다! 지금이야말로 밤! 태양은 죽었다! 손에는 방망이를 쥐어라!" "킹!" "킹!" "오늘 밤의 약속의 땅은 하수도 물과 함께 사는 불결한 쥐새끼 둥지다!" "킹!" "킹!" "킹!" "요짐보 따위를 두려워 말라!" "킹!" "킹!" "킹!"

 두웅, 하고 징이 울렸다. 수령이 손에 든 청룡도를 불에 들이댔다. "가자!" 광란의 횻토코 집단은 수령의 호령 아래, 눈사태처럼 '영 오모시로이'에서 뛰쳐 나갔다. 목표는...... 부랑자 캠프다!


4

 가부좌 메디테이션을 마치고 2분간 심호흡을 세 번 행한 뒤, 닌자 슬레이어는 조용히 일어섰다. 상처는 6할 정도 회복되었다. 론 센세이의 응급처치는 적절했으며, 닌자 슬레이어 자신의 닌자 회복력 또한 비범하였다. 이 이상 여기에 머무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언제 소우카이야가 이곳의 냄새를 맡을지 모른다.

 무엇보다도 닌자 슬레이어는 유카노의 신변이 걱정이었다. 와타나베의 정보망이 제 역할을 해주리란 보증도 없다. 떠나야 할 때다.

 닌자 슬레이어는 보스턴 백의 지퍼를 열어 자신의 검붉은 닌자 복장이 제대로 개어져 들어가 있는지를 확인했다. 등 뒤에서 노렌이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졌다. 닌자 슬레이어는 지퍼를 닫고 고개를 돌렸다.

"......" 와타나베였다. 넓은 어깨, 억센 얼굴, 사각형 실루엣. 비에 젖은 채, 눈을 형형히 빛내며 닌자 슬레이어를 말없이 응시하고 있었다. 처참한 표정이었다.

"왜 그러지?" 닌자 슬레이어가 질문했다. 그의 닌자 제6감이 와타나베의 노출된 투쟁심, 그리고 비애를 느끼고 있었다. 와타나베가 대답했다. "본래의 모습으로 갈아입도록 하게, 모리타=상. 아니, 닌자 슬레이어." "......" "나도 갈아입도록 하지."

"와타나베=상." "나는 닌자다, 닌자 슬레이어=상. 소우카이 신디케이트의." 닌자 슬레이어가 끄덕였다. "알겠다." 보스턴 백을 들고서 텐트에서 나섰다. 그리고 옆 텐트, 론 센세이의 진찰소로 향했다.

 진료소에는 아무도 없었다. 론 센세이는 아마 통풍에 걸린 마케누마씨 집에 왕진을 나갔을 것이다. 닌자 슬레이어는 거기에서 자신의 닌자 복장의 소매에 팔을 넣었다. 두건을 두르고, '忍(인)', '殺(살)' 이라 조각된 무시무시한 디자인인 멘포를 장착한다. 자신에게 빙의한 닌자 소울이 꿈틀댄다.

 닌자 슬레이어는 와타나베=상의 과거, 그리고 현재에 대해 생각하고서 그것들을 털어 버리려 했다. 자비는 없다. 닌자에게 죽음을.

 진료소 텐트에서 나오자 와타나베도 마찬가지로 옷을 갈아입고서 자신의 텐트에서 나오는 참이었다. 자갈색 닌자 복장을 입은 와타나베가 닌자 슬레이어에게 오지기했다. "도-모, 닌자 슬레이어=상. 인터럽터입니다." "도-모, 인터럽터=상. 닌자 슬레이어입니다."

 부랑자 캠프는 침묵에 휩싸여 있었다. 그저, 전기 본보리 램프의 불빛이 켜져 있을 뿐. 다들 낮 동안에 빈 깡통 줍기에 매진하느라 지쳐 쓰러져 자고 있는 것이리라. 닌자 슬레이어와 인터럽터는 3미터 거리를 유지하면서 천천히 둥글게 돌았다. 서로 다가갈 틈을 엿보고 있는 것이다.

"어째서 일부러 정체를 드러냈지? 인터럽터=상. 자고 있는 내 목을 칠 기회가 있었을텐데." "소우카이 신디케이트에 복귀한 것은 방금 전의 일이다. 네가 닌자 슬레이어라는 사실을 알고 테우치(암살) 지령을 받은 것도 마찬가지. 나는 신디케이트에서 탈주했었다. 하지만 그것도 끝이다."

"자네는 그것으로 만족하는가? 아내가, 아이가 기다리고 있었을 터이다만?" 닌자 슬레이어가 질문한다. 인터럽터는 어둡게 웃었다. "그렇고 말고. 가족. 오하기 의존증을 끊고 나는 제대로 된 인간으로 돌아갈 거다. 그리고 가족을 되찾을 거다." "제대로 된 인간? 틀렸다. 자네는 닌자로 돌아간 것이다. 무자비한 살인자로."

"다물어라!" 인터럽터가 공격에 나섰다. 번개 같은 속도의 발차기다! 닌자 슬레이어는 아슬아슬하게 그것을 피해냈다. 그 움직임은 어딘가 어색했다. 몸이 완벽한 상태가 아닌 것이다.

 닌자 슬레이어는 인터럽터의 발차기를 붙잡아 던졌다. "이얏-!" "끄악-!" 그러나 인터럽터도 보통이 아닌 자. 공중에서 쉽게 낙법을 친 그는 고양이처럼 착지했다. 닌자 슬레이어가 착지 지점에 수리켄을 던졌다. 인터럽터의 양팔이 재빠르게 움직이자 수리켄은 튕겨져 나가 있었다.

"진심을 보여라, 닌자 슬레이어. 상처 따위가 다 뭐냐. 이 정도 주 짓수로 코카트리스=상, 심지어 다크닌자=상을 쓰러뜨렸을 리가 없다. 진심을 내란 말이다. 난 식스 게이츠 최강의 닌자다. 나는 무르지 않아." 인터럽터가 용맹하게 단언했다.

"이얏-!" 닌자 슬레이어가 날아차기를 구사했다. "이얏-!" 인터럽터도 같은 각도로 날아차기하여 응했다. 두 사람이 공중에서 교차했다. 착지와 동시에 두 사람은 뒤돌아 보며 발차기를 뻗는다. 그 또한 같은 각도였다. 발차기와 발차기가 부딪혀 불꽃이 튄다.

 호각! 아니, 닌자 슬레이어는 거기에 더해 또 한 번의 발차기를 남겨둔 상태였다! 반대쪽 다리를 당구 큐대처럼 내질러 인터럽터의 가슴을 찌른다. 밀려지듯 날아간 인터럽터에게 미끄러지듯 다가가는 닌자 슬레이어. 추격에 나선 것이다.

 또다시 고양이처럼 같이 착지한 인터럽터는 요격을 꾀하는 것인지 기묘하게 허리를 약간 낮춘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닌자 슬레이어는 그 자세에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그러나 공격을 멈출 수는 없음이라. 인터럽터의 하복부를 향해 닌자 슬레이어는 춉을 내질렀다.

"이얏-!" "훙하-!" 인터럽터가 소리쳤다. 닌자의 샤우트와는 이질적인 외침이었다. 닌자 슬레이어의 춉이 허리를 낮춘 자세인 인터럽터의 복근에 꽂히...... 아니, 다르다! 오오, 보라, 무언가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오히려 닌자 슬레이어의 손이 단단히 붙들려 있는 것이 아닌가!

 인터럽터가 상반신을 뒤틀었다. 상체만이 거의 뒤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오른팔의 괴상한 긴장 상태를 보라! 무언가가 온다! 닌자 슬레이어는 방어 자세를 취하려 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몸은 그 자리에 꼼짝없이 못박혀 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닌자 슬레이어를 짓누르고 있었다!

"하잇-!" 인터럽터가 소리쳤다. 휘두른 주먹이 닌자 슬레이어의 턱에 직격했다. 닌자 슬레이어의 몸은 비스듬하게 공중으로 날아갔다. 1초 후, 두웅하는 충격음이 방사선 모양으로 뻗으며 발생하고, 근처의 텐트가 찌그러져 안에 있던 부랑자가 황급히 뛰어나왔다가 닌자의 모습을 보고 굴러가듯 도망쳤다.

"끄악-!" 떠올려 주셨으면 한다. 부랑자 캠프는 거대한 지하 창고 구획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닌자 슬레이어는 높이 날아가다가 천장에 그 몸이 쳐박히는 꼴이 되었다. 그 대미지는 어떠할 것인가!? 수직으로 낙하하는 그를 기다리며 자세를 취한 인터럽터가... 오오, 이것은!

 그는 낙하 예측지점에서 다시 허리를 반쯤 내린 자세를 취했다. 나무아미타불! 이 무슨 무자비! 인터럽터는 낙하하는 닌자 슬레이어에게 이제 막 때려 박았던 그 타격을 다시 꽂으려 하는 것이다. 식스 게이츠 최강을 자칭하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냉혹함이 요구되는 것인가!

"하잇-!" 또 한 번의 직격, 1초 뒤의 파열음...... 그러나, 닌자 슬레이어는 날아가지 않았다. 놀랍게도 그는 공중에서 인터럽터의 타격을 포착하여 받아 넘겼던 것이다. 원을 그리는 듯한 움직임으로 인터럽터의 팔에 휘감겨 얽힌다. 마치 마이코와 같은 유려함이었다.

"왓쇼이!" 인터럽터의 몸 주변에 어깨띠처럼 휘감겼다가, 닌자 슬레이어가 인터럽터를 하늘 높이 집어 던졌다. 그 무시무시한 타격기의 충격을 그대로 인터럽터에게 되돌려 주는 형태로 내던져 버린 것이다. "끄악-!" 천장에 쳐박히는 것은 이번에는 인터럽터 차례였다.

 천장에 충돌한 후 수직으로 낙하하는 인터럽터. 평소의 닌자 슬레이어였다면 여기서 공중에서 붙잡아 '이나즈나 떨구기'를 성공시켜 마무리 일격을 할 참이었다. 그러나 닌자 슬레이어는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인터럽터는 낙하하면서 균형을 되찾아 착지했다.

"과연. 철회하지. 자네는 두려워할만 한 카라테 사용자다, 닌자 슬레이어=상." 인터럽터가 코피를 닦았다. "그러나 어째서 인정을 베풀었지? 수치를 줄 셈인가?" 닌자 슬레이어는 조용히 부랑자 캠프의 출입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직후였다. 작은 문이 일그러지더니 튕겨져 나간 것은!

 그리고 횻토코 가면을 쓰고서 금속 방망이를 든 무장집단이 밀려들었다. 닌자 슬레이어의 닌자 제6감은 습격자가 다가오고 있음을 감지했던 것이다. "뭐라고!" 인터럽터가 소리쳤다. 닌자 슬레이어는 인터럽터를 보았다. "자네가 불러들인 것은 아닌 것 같군."

"당연하지!" 인터럽터가 소리쳐 대답했다. "나는 수에 의존하는 비겁한 짓은 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래, 애초에 이곳은 자네의 『고향』이다. 횻토코 클랜을 불러들이는 일 따위 있을 수 없겠지." 닌자 슬레이어가 조용히 말했다. 인터럽터는 침묵했다. 이윽고 입을 열었다. "잠시 휴전이다..."

 횻토코들이 벽의 구멍에서 기어 나오는 개미처럼 지하 창고 공간으로 달려 나왔다. 손에 횃불을 들고 있는 횻토코도 있었다. "얏찌마에(해치워라)-!"

 수면을 방해받아 이상함을 느낀 부랑자들이 텐트에서 뛰쳐나왔다. "론 센세이! 나다, 와타나베다!" 인터럽터가 달려가던 깡마른 중년 남성을 불러 세웠다. "닌자! 도와줘!" "설명은 나중이다, 론 센세이! 횻토코는 우리들이 상대하겠다. 센세이는 모두를 깨워서 반대쪽 출구로 도망쳐!"

"아, 알겠네, 설마 그쪽 닌자는 모리타=상인가!? 아이-!" 론 센세이는 두려워 하면서도 자신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달려갔다. 두 닌자는 마주보고 끄덕인 후, 쇄도하는 횻토코 집단을 향해 점프했다.

 횻토코 무리들은 손에 든 금속 방망이로 닥치는 대로 근처의 텐트나 골판지, 본보리 램프를 마구 때렸다. 그 뒤에서 만족스럽다는 모습으로 우뚝 서있는 장신의 횻토코 수령. 그 거친 모습을 보자 헤이안 시대의 사악 닌자 '아케치 닌자'가 사병들을 이끌고 마을을 황폐화하며 만들었다는 지옥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소란의 한가운데에 두 닌자가 착지하자 횻토코들이 깜짝 놀라서 손을 멈추고 침묵에 휩싸였다. "닌자!?" "어째서 닌자가......" 횻토코 중 하나가 수령쪽을 돌아보았다. "킹! 닌자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어요! 테스트에는 안 나와......" 수령은 태연한 모습이었다. "신경 쓰지 마라."

 수령은 손에 쥔 청룡도를 높이 들어올렸다. "약속의 자식들이여! 닌자는 횻토코가 아니다! 태양도 아니다! 따라서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신경 쓰지 말고 텐트를 불태워라! 부랑자를 사냥해라!" 횻토코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 그런건가......" "역시나 킹!" "킹! 킹! 킹!" "얏찌마에-!"

"이얏-!" 닌자 슬레이어의 몸이 팽이처럼 회전했다. "끄악-!" 방사선 모양으로 여섯 장의 수리켄이 날아가, 정수리와 심장에 두 장씩 수리켄이 꽂힌 3명의 횻토코가 목숨이 끊어지며 쓰러져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상관하지 않고 도망치는 부랑자들을 쫓으려는 횻토코들은 인터럽터가 막아섰다.

"하잇-!" 인터럽터의 타타미 켄에 당해 수평으로 날아가던 횻토코가 등뒤에 있던 다른 두 명까지 휘말리게 하며 벽에 쳐박혔다. "끄악-!" "끄악-!" "끄악-!"

 두 닌자는 함께 폭풍과도 같은 살육을 벌였다. 그러나 횻토코의 수가 지나치게 많았다. 수령의 말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그들의 이상한 가치관이 닌자에 대한 공포심을 억제하고 있는 듯했다. 결국 몇몇이 방해를 돌파하고 텐트에 불을 지르는 것에 성공했다.

 타기 쉬운 소재로 만들어진 텐트와 골판지 하우스가 부랑자가 발품을 팔아 모은 소중한 가재도구들과 함께 간단히 타올랐다. 거대 창고의 스프링쿨러 장치가 그것에 반응하여 물을 뿜기 시작했다. 불과 물, 발생하는 수증기로 부랑자 캠프는 금세 말법 세상의 지옥도로 변했다.

 그럼에도 한 번의 공격으로 여러 횻토코의 목숨을 거두어 가는 닌자 두 명으로 인해 습격자들이 전멸하는 것 또한 시간문제였다. 자신의 조직 구성원들을 마치 버림돌처럼 사용하며 앞뒤 가리지 않는 수령의 작전은 이상한 것이었다. "호호호호!" 오멘 속에서 수령이 웃었다. "이제 이 마을도 끝이로군요. 인터럽터=상!"

"어째서 네가 그 이름을 알고 있......" 인터럽터가 수령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깨달음에 이르렀다. "이번엔 그 횻토코 수령의 몸을 빼앗은 것인가, 워록=상!?" "이그젝틀리(그 말씀대로), 인터럽터=상! 도-모!"

"어떻게 된거지?" 최후의 횻토코를 정리하고 뛰어서 돌아온 닌자 슬레이어가 인터럽터에게 질문했다. 인터럽터가 대답했다. "워록이다. 소우카이 식스 게이츠 닌자. 타인의 의식을 빼앗는 짓수를 사용한다. 본체는 어딘가 다른 떨어진 곳에 있다."

"호호호호, 이그젝틀리. 하지만 동료의 정보를 팔다니 좋지 않군요." "닥쳐라! 이건 어찌된 일이냐, 워록=상?" "불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닌자 슬레이어에게 아이사츠도 하지 않고서 워록이 인터럽터의 말에 대답했다. "이 캠프는 당신의 나약한 인간성의 터전이지요."

 수증기와 열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론 센세이는 부랑자들을 피신시킬 수 있었을까. "당신은 식스 게이츠 닌자입니다. 과거 당신이 도망쳤던 것도 그 인간성 때문. 그렇기에 그런 것은 버려주셔야지요. 급할수록 돌아가라. 당신의 집은 여기가 아닌, 소우카이 신디케이트이니까요."

"뭐라고......" 워록은 새삼 닌자 슬레이어 쪽으로 몸을 돌려 오지기했다. "그리고, 하지메마시떼, 닌자 슬레이어=상. 워록입니다." "도-모, 워록=상, 닌자 슬레이어입니다. 소우카이야의 외도 놈, 그리 오래 살 수 있을거라 생각마라." "호호호호!"

 워록이 인터럽터의 허리 부근을 가리켰다. "그나저나, 뭔가가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셨나요. 인터럽터=상? 소중한 것이!" "뭣! 끄악-!" 인터럽터가 아연실색했다. 허리에 달아두었던 오하기가 든 바이오 조릿대 밀폐용기가 무참히 깨져 있었다. "어느새에!"

"제 넨 리키(염력)은 만능입니다. 조무래기 횻토코들과의 싸움으로 정신이 딴데로 향한 당신에게서 오하기를 훔쳐내는 것 따위 실로 쉬운 일. 홈을 잃고, 오하기도 잃었습니다. 이것으로 당신은 맑은 심신을 겸비한 클린 닌자입니다, 축하드립니다. 호호호호......" "네놈!"

"그리고 안타깝지만 닌자 슬레이어=상, 당신에게는 그가 숨기고 있는 진실을 전해야만 하겠습니다!" "그만둬!" 인터럽터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워록을 덮치려 했으나 다리가 꼬여 쓰러져 버렸다. 금단증상으로 그는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워록은 어깨를 으쓱하고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던가요? 형사 생활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하기로 도피했다고. 롯폰기에는 아내와 아이. 호호호호! 아니에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만둬... 그만해줘......" "예전부터 그는 그렇게 해서 자신을, 타인을 속이고 있다고들 하더군요?"

"알겠나요, 닌자 슬레이어=상? 그는 살인기호자입니다! 형사로 일하는 한 편, 그는 밤이면 밤마다 그 카라테로 길을 오가는 사람들을 츠지기리(원문 역주 : 묻지마 살인마를 이르는 것) 해왔습니다. 그것을 눈치 챈 후배 형사의 집에 침입하여 그와 아내와 아이를 남김없이 살육했던 겁니다!" "그만둬...... 그만둬......"

"이윽고 그는 닌자가 되어 식스 게이츠에 들어갔습니다. 그의 이상할 정도의 투쟁심을 적절하게 억제하는 것, 그것이 오하기였습니다. 환상 속에 빠진 그는 그러한 사실조차 잊어버렸습니다만...... 안타깝게도 닌자 슬레이어=상, 그러나 이것으로 그는 타고난 살인 머신으로... 끄악-!!"

 닌자 슬레이어의 날아차기가 워록의 머리에 직격했다. 횻토코 가면째로 그 목부터 윗부분이 천 갈래로 찢겨 나갔다. 사이타마 샴페인처럼 격렬하게 혈액을 뿜어내며, 수령의 몸은 엎드려 쓰러져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무릎을 꿇은 채로 인터럽터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우후후...... 아아...... 이 느낌...... 떠오르는군......" "인터럽터=상." "아아...... 좋아, 좋다!" 사각 실루엣 거한이 떨면서 일어난다. 눈에서는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웃고 있었다.

"이 얼마나 개운한가. 나에게는 무엇 하나 쓸데없는 것이 없다." 인터럽터가 반쯤 허리를 내린 자세를 취했다. "자아, 와라, 닌자 슬레이어. 내 타타미 켄과 네 주 짓수. 어느 쪽이 위일 것인가. 종지부를 찍어보지 않겠는가?" "이얏-!" "훙하-!"

 닌자 슬레이어가 인터럽터에게 춉을 날렸다. 나무삼! 당연하다는 듯 인터럽터의 수비 자세는 닌자 슬레이어의 춉을 빈틈없이 받아내 멈추어 고정했다. 인터럽터의 상반신이 뱅글 돌아간다.

"하잇-! ......뭣? 끄악-!" "이얏-!" "끄악-!" 나무아미타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닌자 슬레이어는 고정되어 있지 않은 쪽 손으로 뱅글 뒤로 향한 인터럽터의 준비자세, 타타미 켄을 구사하는 그 팔을 붙잡았던 것이다. 그리고, 나, 나무아미타불!

 닌자 슬레이어는 이 무슨, 한쪽 손 힘만으로 한계까지 뒤튼 인터럽터의 상반신을 그 이상으로 비트는 것으로, 비틀어 끊어버렸던 것이다!

 무참! 허리부터 위 아래가 갈라지며 땅에 쓰러진 인터럽터를 닌자 슬레이어가 내려다 보았다. "......닌자에게 죽음을." 닌자 슬레이어가 중얼거렸다. 감정이 깃들지 않은 목소리였음에도 그는 자기 자신을 타이르고 있는것만 같았다.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인터럽터가 닌자 슬레이어를 바라보았다.

"이걸로 되었어, 모리타=상...... 아니...... 그건 가명인가......" 인터럽터는 웃으며 콜록댔다. "나는 죄가 깊은 망령이다, 나 같은 인간은 이렇게 될 숙명...... 카이샤쿠를 해주지 않겠나, 닌자 슬레이어=상?" 닌자 슬레이어가 끄덕였다.

"알겠는가, 『챠부』다. 『챠부』로 가라. 닌자 슬레이어=상." 인터럽터는 피를 토하며 말했다. "『챠부』의, 마이니치=상을, 만나. 그가, 지금쯤은, 유카노=상의 행방, 분명, 알아냈을 터." "......" "사요나라!" "이얏-!"

 닌자 슬레이어의 춉이 인터럽터의 이마를 때렸다. 이마에 금이 가고, 그곳에서 빛나는 엑토플라즘*이 터져 나왔다. 인터럽터의 닌자 소울이다. 닌자 소울은 닌자 슬레이어의 머리 높이까지 떠오르더니 폭발사산했다.


*ectoplasm, 심령학에서 영매의 몸에서 나온다고 하는 물질.

 닌자 슬레이어는 잠시 가만히 서있었다. 이윽고 그는 발길을 돌려 수증기 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 뒤에는 인터럽터의 무참한 시체만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감긴 눈은 편안했다.

[피스트 필드 위드 리그렛 앤드 오하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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