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비게리・버서스・앰니지어】
[토비게리 버서스 앰니지어]
1
가이온에 울리는 종소리. 습한 공기. 오렌지색 달을 뒤덮은 어지러운 구름. 불안하게 그것을 올려다보는 학. 밤의 교토성, 서쪽의 큰 복도. 그 뒤쪽에 손가락 힘만으로 달라 붙어서 천지가 뒤집힌 자세로 기어 다니는, 한 명의 시노비 닌자 있음이라. 그 닌자 복장은 밤의 정적과도 같은 칠흑. 그의 이름은 밴더스내치.
밴더스내치는 나무 판자 뒤에서 귀를 대고, 복도 위에 있는 적의 숫자를 파악했다. 다행히 닌자는 없다. 무장한 클론 야쿠자가 몇 명. 죽이는 것은 간단하지만 경보를 울리면 곤란하다. 땀이 배어나온다. 아래에서는 산수화를 방불케 하는 작은 개울이 흐르고, 그의 초조함을 일부러 자극하는 것만 같은 우아함을 품은 훌륭한 잉어가 헤엄치고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탈출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밴더스내치가 다시 복도 뒤쪽을 통해 기어가려고 한 그 순간, 밴더스내치는 개울가에 서 있는 등불 하나의 옆에서 이상한 닌자의 그림자를 보았다! 그림자는 풀 페이스를 방불케 하는 멘포! 팔다리는 팔꿈치와 무릎부터 끝까지가 사각뿔 형태의 날붙이로 바뀌어 있어, 거미처럼 소리도 없이 걷는다!
워치독이다. 로드의 호위 담당이자, 교토성을 배회하는 자. 귀찮은 사냥꾼에게 눈도장이 찍히고 말았다. "빌어먹을 새끼가!" 밴더스내치는 철봉 운동을 하는 요령으로 몸에 기세를 붙여, 난간을 뛰어넘듯이 곡선을 그리며 복도 위로 가볍게 회전 착지했다. "뭐얌마-!?" 총을 뽑는 클론 야쿠자!
"이얏-!" 밴더스내치는 앞뒤 동시에 쿠나이를 투척! ""아밧-!"" 이마에 꽂혀서 즉사! 하지만 아직 두 명의 클론 야쿠자가 남아있다. ""까고자빠졌넴마-!"" KBAM! KBAM! 챠카 건이 불을 뿜는다. 성의 높은 곳에서는 최고위 닌자들이 전투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챠를 즐긴다.
"이얏-!" 밴더스내치는 난간을 박차며 서머솔트 점프로 클론 야쿠자의 총알을 피해내며, 무릎을 꿇은 자세로 착지함과 동시에 좌우에 쿠나이 다트를 투척했다. ""끄악-!"" 즉사! 그는 그대로 서쪽 별채로 통하는 건물 간 복도 위를 달린다! 하지만 워치독이 도약해서 착지하여 앞길을 막아섰다!
우활! 워치독의 이 재빠른 도약은 완전히 예상 밖이었다. "도, 도-모, 밴더스내치입니다." 길드에서 이제 막 파문을 당한 시노비 닌자는 다다미 세 장 거리에서 빈틈없이 오지기했다. "똑딱똑딱똑딱똑딱...... 도-모, 밴더스내치=상, 워치독입니다." 무표정한 아이사츠!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어뎁트 계급이었던 닌자, 밴더스내치는 공포에 빠졌다. 자신에게 주어진 벌과 이 기괴한 파수견 닌자에게 주어진 벌, 과연 어느 쪽이 진정으로 무서운 것인가 하고. 워치독은 과거에 길드의 금기를 범하고 로드의 존안을 직시해버렸기 때문에 사고능력을 파괴당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벌을 받으면서도 워치독은 그 능력을 높이 평가받아 목숨만은 살았던 것이다. 임페일먼트와 마찬가지로. 그렇다면 자신은 어떤가. 밴더스내치는 카라테 자세를 잡으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에게 주어진 벌은 죽음의 탈출 유희. 미지근한 바람이 불어와, '나무삼보'라 적힌 개울가의 노보리 플래그를 흔들었다. 그리고 그는 쿠나이를 뽑았다!
"이얏-!" 일직선으로 투척되는 날카로운 강철! 연속으로 4개! 밴더스내치의 움직임은 몹시 재빨랐다! "똑딱똑딱똑딱똑딱" 하지만 워치독은 앞다리로 머리를 어렵지 않게 가드했다. 튕겨져 나가는 쿠나이! 기어 다니는 인간에게 유효한 사격 부위란 머리 뿐이기에, 적이 그곳을 노린다는 것은 뻔한 일인 것이다.
"똑딱똑딱똑딱똑딱......" 워치독이 금속으로 된 앞다리를 내렸다. 밴더스내치가 있던 자리에는 하얀 연기가 감돌고 있었고, 그 기척은 사라져 있었다. 솜씨! 시노비 닌자 클랜이 사용하는 기어(gear) 중 하나, 스모크 봄이다. 그는 워치독과 싸울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고, 도망치는 것만을 생각했던 것이다.
밴더스내치는 서쪽 탈출 루트를 포기하고 동쪽의 혼마루*로 내달려 돌아가고 있었다. 경보가 울린 이상 정원으로 나가도 케이비인에게 살해당하는 것이 고작이다. 그는 굳이 혼마루로 가서 로드에게 사면해줄 것을 직소해보자는 도박에 나섰다. 워치독은 배후에 있으니 경비는 약간이나마 허술할 것이다.
*원문은 ホンマル로, 本丸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보인다. 성의 중심이 되는 건물로 본성이라고도 한다.
정확한 상황 판단, 그리고 대담한 행동력! 어째서 나는 이것을 더 빨리 발휘하지 못했단 말인가. 밴더스내치는 분함에 이를 악물며, 일반인의 세 배의 각력과 로드의 자비로움을 믿고 내달렸다. '뉴 월드 오더', '격차 사회', '철저한'....... 어두운 복도에 장식된 훈시 쇼도(서도)들에 본보리 램프가 비춰진다.
밴더스내치는 약간의 감속도 아쉽다는 듯이, 벽을 차며 L자 커브를 돌았다. 양옆의 장지문에서 번갈아 나오는 사스마타 트랩을 회피하면서,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린다. 하지만 긴 복도 끝에 나타난 것은 앞질러 온 워치독의 그림자! "댐 잇!" 뒤를 돌아보는 밴더스내치!
"도-모, 밴더스내치=상. 레드 클리버입니다." 후방의 L자 커브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새로운 추격자 닌자! 거대한 체구 위에 멜빵바지형 닌자 복장을 입고, 큰 손도끼를 들고 있는 그 모습은 무자비한 도살자를 떠올리게 한다. 도망칠 곳은 없음! 앞문에는 타이거, 뒷문에는 버팔로라는 코토와자와도 같은 상태다!
◆◆◆
작은 다실에 정좌한 그 여닌자는, 둥근 장지문 저편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폭발사산 소리에 얼굴을 찌푸렸다. 그 직후 교토성은 그윽한 우시미츠 아워의 정적에 휩싸이고, 호-호-호호우하는 올빼미의 소리와 어딘가에서 노예 오이란이 손톱을 튕기며 연주하는 음울한 펜타토닉 스케일 오코토(거문고) 소리만이 희미하게.
"하늘은 이렇게나 맑은데 음습하군요." 라고 말하는 여닌자. 윤기가 흐르는 긴 검은 머리. 선명한 붉은색 일본풍 옷. 그 가슴은 풍만했다. 그녀의 이름은 유카노. 드래곤 닌자 클랜의 두령, 드래곤 겐도소의 손녀이자 유족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자이바츠 섀도우 길드에 갇혀 있는 신세였다.
"그런 빈정거림은 하이쿠로 표현해라." 파라곤이 검은 국자를 차솥에 담갔다가, 녹색 액체를 유카노 앞의 다기에 부었다. "교토에서는 말이지." 훌륭히 절차를 밟았으나 일말의 투박함 또한 엿보인다. 그가 나면서 부터 귀족이 아니었다는 증거다. 하지만 굳이 그것을 지적하는 시츠레이(실례)를 저지를 이는 길드 내에는 없다.
"조금 전의 폭발은?" 유카노가 묻는다. "손님이 마음 쓸 일은 아니야. 교토성 경비에 만전을 기하기 위하여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체포 훈련이다." 파라곤이 코로 흥 소리를 내며 웃었다. "침입자에게도, 탈주자에게도 만반의 대응을 할 수 있게 말이지." 그것은 즉, 묘한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견제이기도 했다.
"손님?" 유카노가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하다." 파라곤이 쥘부채를 가슴에서 꺼내어, 차솥을 보면서 대답했다. "자이바츠 섀도우 길드가 이상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귀녀의 힘이 필요한 것이다. 계속 찾고 있었지." "제 기분에 대한 배려는 어디에 두었는지요?" 유카노는 챠에 손을 대지 않았다.
"기억은 돌아왔다고 들었는데......" 라며 파라곤이 일어섰다. "확인을 위해 묻지, 이름은?" "겐도소의 손녀, 드래곤 유카노." 그녀는 힘이 깃든 눈동자로 그리 대답했다. 파라곤은 조금 생각하다가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틀렸어." "......뭐가 틀렸다는 거지? ......드래곤 닌자 클랜을 우롱할 셈이냐?"
"따라오도록 해라. 성 내부를 안내하지." 파라곤은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후스마 도어를 열고서 돌아보며, 종교 선동자를 방불케 하듯 두 손을 벌리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 결사의 이념에 대해 이야기하마.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이상 세계를. 그리하면 귀녀는 분명 자진해서 우리 로드께 힘을 빌려주게 되리라. 힘을 잃은 가련한 신화급 닌자여."
◆◆◆
교토성 캐슬 내부에 여럿 존재하는 다실 중 하나인 뱀부 리퓨지. 죽림을 본뜬 실내에는 작은 암자가 있으며, 하얀 돌을 깔아놓은 정원에는 날개의 힘줄이 잘린 애완용 오가닉 학이 세 마리, 긴 다리를 조용히 옮기며 얌전히 바위의 이끼를 쪼아 먹고 있었다. 다다미에 앉은 것은 두 명의 그랜드 마스터.
그랜드 마스터의 지위는 평등하며, 길드 내에 파벌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닌자가 인류를 지배하고, 쇼군 오버로드의 후예인 로드 오브 자이바츠가 그 정점에 군림하는 닌자 밀레니엄 실현을 위해 모든 길드원은 매진하고 있기에. ......시시한 겉치레다.
그 시시함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 이 두 닌자...... 퍼거토리와 슬로핸드였다. 이들은 닌자가 되기 이전부터 귀족이었다. 길드 내에서 소울 빙의 전의 계급과 출신을 캐는 것은 시츠레이에 해당하지만, 피의 우열을 믿어 마지 않는 그들은 숨쉬듯 파벌을 만들어 낸다.
"이제와서 새삼 이그조스천=상의 죽음이 아쉬워지는군." "심지어 오명까지 쓰다니 말일세." ......과거 이그조스천이 살아있었을 무렵, 그들의 귀족 파벌은 길드 내에서 최대의 세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크닌자와 닌자 슬레이어가 출현한 이후 파벌간 역학 관계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과연 어디서부터 톱니바퀴가 틀어지기 시작한 것인지...... 물론 로드의 절대성을 의심하지는 않네만, 그러나......" 슬로핸드가 생각에 빠진 듯이 챠를 들이켰다. "......그 뱀 같은 자가, 독이 깃든 혀로 로드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기에 그런 것은 아닐지?" 퍼거토리가 학을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유도된 대답임을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 채로.
"흩어진 구름 / 학의 날개 깃털엔 / 독 품은 거미." 슬로핸드가 특수한 방식에 따라 다완을 움직이면서 유유히 하이쿠를 읊었다. 얼핏 보면 오늘 밤의 정경을 읊은 것으로도 보인다. 퍼거토리 또한 같은 방식에 따라 다완을 움직였다. 뱀, 학, 거미, 그리고 이 다완이 움직이는 궤적은 즉 파라곤을 의미하는 은어였다.
암호를 사용하고 있다고는 하나 위험한 내용이었다. 암흑 메가코퍼레이션의 간부들이었다면 남극 기지의 불법 프록시 서버를 통한 비밀 IRC를 사용했으리라. 하지만 닌자 소울 빙의자...... 특히 고위의 소울이 깃든 자는, 왠지 인터넷 기술에 불신감을 품은 이가 많다. 특히 LAN 직결이나 IRC에.
더불어 자이바츠는 인간과 대비되는 닌자의 우월성이 그 초석이 되어있는 조직이기에, 사이버네틱스를 통한 능력 보완자의 평가는 더욱 낮아진다. 특히 귀족계 파벌은 이를 까닭없이 꺼린다. 디센션이 빈발하게 되어 사이버네틱스를 단 자들도 늘어났으나, IRC 코토다마 공간의 존재는 여전히 길드 상층부에게 인지조차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멧돼지', '사슴', '버터플라이', '챠가 맛있다' 두 사람은 뱅뱅 돌리는 절차를 밟으며 파라곤과 다른 파벌의 움직임에 대해 대책을 강구했다. 느닷없이 후스마 도어에서 노크 소리가 울리고, 체포 훈련을 마친 케이비인이 나타났다. 두 사람은 케이비인을 반갑게 맞이하며 화제를 차기 그랜드 마스터 후보 건으로 돌렸다.
◆◆◆
"......이처럼, 닌자에게 통치되는 이상 세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 우리의 목적." 파라곤은 손가락 끝의 사이버네틱스 장치로 암호 레이저를 쏴서 미술품이 있는 방의 잠금 장치를 해제했다. 그 세로로 긴 공간에는 대영 박물관을 방불케 하듯 다양한 일상 용품과 미술품이 즐비했고, 중앙에는 긴 붉은 융단이 깔려 있었다.
파라곤의 재촉을 받아 유카노는 붉은 융단 위를 걸었다. 카타나(일본도), 요로이(갑옷), 눈챠쿠(쌍절곤), 군단(군담), 쇼도(서도), 본자이(분재) 등 흔한 고미술품부터 닌자 수정 해골, 황금 수리켄, 파라오를 방불케 하는 대리석 조각상 등 고대 닌자 문명의 오파츠라고 불러야 할 보물들까지 다양한 물품이 소장되어 있었다.
미술품 해설을 시작하는 파라곤. 돌로 만들어진 넓은 방에 그 목소리가 엄숙하게 울린다. "이런 것을 보여줘서 어쩌라는 건가요?" 유카노가 끼어들었다. "애초에 어찌하여 닌자가 사람을 지배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까?" "사자가 사슴을 잡아먹는 것과 같은 이치......" 파라곤이 대답했다. "당연한 것이며 기쁜 일이다."
"더불어, 나는 진정으로 고상한 것이 부당한 취급을 받고 있다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음이야." 파라곤은 앞서 걸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완벽주의자다. 세계가 있어야 할 모습으로 돌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지. 저속한 인간 사회의 해로운 독과 과학 기술이, 닌자 소울 빙의자가 되기 이전의 그 분을 너무나도 괴롭혀 왔다......"
오늘 밤의 파라곤은 약간 말이 많았다. 길드원들 앞에서는 절대 말하지 않는 비밀을 이렇게 가볍게 넌지시 비추려 하다니. 그러나 무리도 아닐 것이다. 오랜 세월 찾고 있던 퍼즐의 마지막 한 조각이 이렇게 손에 들어왔으니까. "......그리고 귀녀다. 어찌하여 정통된 권력을 되찾으려 하지 않는가?"
"정통된 권력?" 유카노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수천 년을 살아온 리얼 닌자로서의 지위." 파라곤이 말했다. "닌자 밀레니엄이 도래하면 당연히, 로드 바로 다음 지위에 앉아 추앙받은 것을." "또 그 시시한 이야기인가요? 저는 드래곤 겐도소의 손녀......" 유카노가 가로막았다.
"부모의 이름은?" 파라곤 또한 그녀의 말을 막았다. "철이 들기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듣지 못했습니다." "귀녀의 나이는?" "기억이 올바르다면 스물 하고도 조금 더." "샐러맨더=상 등이 드래곤 도죠에서 수행을 쌓은 것은 몇 년 전인지?" "십수년 전......" "그 시절의 기억은?" "너무 어렸기 때문에 생각나는 것이...... 그러나......"
파라곤이 손끝의 레이저로 그림 두루마리 중 하나를 가리켰다. 전시 구역은 어느새 그림이나 비욘보(병풍)들을 위한 공간으로 바뀌어 있었다. 중세...... 에도 시대일까. 다이묘와 사무라이들이 회의를 하고 있는 옆의 다실에서 닌자들이 앉아 조공받은 코베인(금화)을 세고 있다. 어둠의 세계의 진실을 그린 금단의 그림이었다.
"그게 어쨌다는......" 유카노가 도중까지 말하다 멈췄다. 십여 명의 닌자들 속에, 붉은 일본옷을 입은 검은 머리카락의 여자가 섞여 있었다. 유카노와 매우 닮은 얼굴 생김새와 머리 모양. 그 가슴은 풍만했다. "그 일본옷은 귀녀가 스스로 선택한 물건이었지?" 라는 파라곤. "수십 빛깔이 있는 일본옷 중에서. 붉은색을 좋아하는 모양이군."
"우연의 일치......" 유카노가 입을 열자 파라곤은 다른 비욘보를 가리켰다. 그것은 한층 더 오래된...... 아마도 헤이안 시대의 것이리라. 유카노는 격렬한 두근거림을 느끼며 그것을 보았다...... 오오, 나무삼! 닌자끼리 해변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장대한 그림 속에, 역시나 유카노를 방불케 하는 여닌자의 모습이!
"고급 후톤 이불에서 푹 자며 자신이 누구인지 다시 살피도록 하라." 파라곤이 말했다. "최종 전쟁이 이 지상을 뒤덮기 전에. 이쿠사 배틀의 때는 가깝다. 고사기에 기록된, 닌자들의 라그나로크가 도래한다. 그 다음에는 빛나는 닌자 밀레니엄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이 지상은 한 차례 지고쿠 헬로 바뀌어야만 해."
2
교토성 부지 안에 세워진 유폐탑의 어느 방. 오가닉 다다미를 깔아두는 것으로 포로의 릴랙제이션 효과를 고양시킨다. 도코노마, 챠부(밥상), 족자...... 위압적인 특수합금제 작은 창을 제외하면, 최고급 오이란 료칸을 떠올릴 정도로 널찍한 만듦새. 스시를 다 먹은 유카노는 안락한 후톤 이불 속에 누워 있었다.
다섯 겹의 후톤 이불 · 매트릭스는 니르바나와도 같은 부드러움으로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잠자리 수묵화와 '편안함'이라는 쇼도(서도)가 반복되어 그려진 최상급 후톤 이불이 깃털과도 같은 가벼움과 따뜻함으로 그녀를 품어준다. 장지문을 사이에 둔 복도에는 본보리 램프의 부드러운 등불이 흔들리고, 불침번을 맡은 닌자가 두루마리를 읽고 있었다.
치지직, 하고 무언가가 타들어 가는 작은 소리. 나방이 본보리 램프 속으로 뛰어든 것일까. 순간적으로 붉게 달아오른 불꽃이 장지문 너머로 스미고, '불여귀'라 적힌 쇼도에 격자형 그림자를 드리운다. 유카노의 뉴런에서 떠다니는 것은 파라곤이 했던 말과 낡은 디스크를 방불케 하듯 단편화된 자신의 기억.
(((......마루노우치 항쟁의 목적 중 하나는, 다름 아닌 귀녀였다......))) 울리는 파라곤의 목소리. 유카노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도망칠 길 없는 미로를 방황하듯 나뭇결의 무늬를 눈으로 쫓았다. 훌륭한 나뭇결을 가진 편백나무 판자 한 장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어지고, 약간 패턴이 다른 판자가 위아래로 루프되어 있다.
(((파라곤의 말은 독이야...... 날 혼란시키려 하고 있어...... 헤이안 시대부터 살아 있다니, 그런 말을......))) 유카노가 자신에게 남은 울림을 부정한다. 기억을 더듬는다. 기억의 레이어를 내려간다. 섀도우 콘. 잇키 우치코와시 투사 시절. 아와비(전복) 숲. 드래곤 도죠...... 비밀을 지키기 위하여 그 장소를 몇 번 바꾸곤 했다.
테츠오...... 후지키도 켄지...... 샐러맨더...... 앤서러...... 드래곤 겐도소...... 시계열을 거슬러 올라갈 때마다 뇌내 영상의 입자는 거칠어졌으나, 인연 있는 자들의 얼굴이 차례로 주마등 리콜되었다. 어떠한 결락도 없다. 유카노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것이야말로 자신이라고. 하지만 다음 순간에 또 다른 전율이 그녀를 덮쳤다.
몇 명의 제자들의 얼굴이 이어지다 잠깐의 공백. 젊은 남자의 얼굴. 이름조차 모르는 부친의 모습일까, 하고 유카노는 생각했다. 하지만 뉴런은 무자비하게 전기 신호를 전달하여 그 남자가 겐도소 그임을 알려왔다. 유카노는 기억 속으로 잠행하기를 멈추었다. 실제, 그 앞 레이어에는 복구 불가능할 정도로 단편화된 깜깜한 어둠이 있었다.
의젓한 유카노도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딘가 기댈 곳은 없을까. 하지만 겐도소는 죽었고, 샐러맨더는 폭발사산했다. 그렇다면 후지키도 켄지...... 그는 아직 살아있을까? 그럴 터다. 강대하고도 사악한 닌자 소울에 빙의되어 있다. 쉽게는 죽지 않는다. 생지옥 속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원인은 자신에게 있는 것일까?
뉴런이 혼탁해지기 시작한다. 중압감. 순간 맹렬한 졸음이 덮쳐왔다. 생각을 멈추자는 달콤한 유혹.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모든 것이 해결되어 있으리라는 정체를 모를 확신. 한심스러움에 대한 분노가 간신히 그 생각에 저항한다. 어떤 음(音)은 없을까, 라고 생각한다. 이럴 때에 스스로를 고무하기 위한 낙(樂)이 있지 않을까, 하고. *그러나 아무것도 생각나는 것은 없었다.
*합쳐서 '음악'을 나타낸다.
◆◆◆
교토성, 만찬실. 노예 오이란들이 연주하는 파이프 오르간의 장엄한 가락 속, 로드 오브 자이바츠와 파라곤이 단 둘이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오가닉 와규 스테이크를 자르는 칼 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진다. 탁상 본보리 램프의 불빛만이 어둠 속에서 그들의 모습을 떠오르게 했다.
"므호-호-호-......" 얼굴을 드러낸 로드는 은으로 만든 포크로 고기 하나를 입으로 옮겼다. 거의 씹지 않아도 고기는 입안에서 녹아버린다. 최고급 와규는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고기맛을 언제까지나 즐기고 싶어하는 카치구미 노인들을 위해 바이오 품종 개량을 거듭하여, 모독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의 부드러움을 자랑한다.
"파라곤이여, 그 유카노라 했던가...... 우리가 찾고 있던 피메일 리얼 닌자임에 틀림 없으렷다?" "실로 그러합니다, 마이 로드." 파라곤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그는 길드 내에서 로드의 맨얼굴을 아는 유일한 하인이다. 그리고 그런 사실조차 은닉되어 있는 것이다. "므호-호-호, 개의치 않는다."
"므호-호-호-...... 절멸되었다 생각하고 있었다만...... 결국은 아라크니드의...... 점괘대로였던가. ......기억은 어떤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만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여차하면 억지로라도 일을 진행할 예정이기에......" "므호-호-호-...... 므호-호-호-호-......!"
◆◆◆
유카노는 정좌하여 반성하고 있었다. 자신이 신화급 닌자였건, 겐도소의 손녀였건 간에, 운명에 휩쓸려 한심스러운 모습을 보였음에는 틀림없었던 것이다. "이곳은 기분이 우울해집니다, 뭐라도 음악을." 그리 말하자, 불침번을 하던 풋내기 닌자가 황급히 아래층으로 향했다.
유카노가 한숨을 내쉬었다. 잠들어 버렸으면, 깨어났을 때는 다른 사람처럼 변해있지 않았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 직후, 커다란 까마귀가 작은 창밖으로 내려오지 않았나, 하고 그녀는 착각했다. 헤이안 고딕 양식을 방불케 하는 작은 창 밖으로. 하지만 실제로는 허무승 삿갓을 쓴 닌자였다.
◆◆◆
여러 개의 쿠나이 벨트를 두른 젊은 닌자...... 섀도우위브는 실례가 되지 않도록 그윽한 발걸음으로 다시 계단을 올랐다. 유카노를 지켜보는 역할은 당초에는 다크닌자에게 맡겨진 일이었으나, 겐도소의 원수인 그가 불필요한 자극이 되지 않도록 섀도우위브에게 통째로 떠넘기게 된 것이다.
"노예 오이란이 연주하는 곡은 싫다고 하셨기에......" 섀도우위브가 장지문 앞에서 정좌하며 말했다. 그리고 올바른 예절에 따라 장지문 가장자리만을 조금 열고, 붉게 옻칠된 오가닉 나무 바구니를 집어넣은 뒤 곧바로 문을 닫았다. "......이것은?" "피리와 작은 오코토, 그리고 타이코(북)입니다."
"저에게 스스로 연주하라는?" 유카노가 자신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조금 전까지의 꽉 막힌 것만 같은 비통한 분위기가 사라지고, 어느 정도 인간다워져 있었다. 큰 까마귀는 이미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다. "시, 실례였을지요?" 섀도우위브는 초조함을 느꼈다. 다크닌자에게서 받은 영예로운 임무에 먹칠을 한 것 아닐까, 하고.
"보통은 당신이 연주하는 것 아닐까요?" "저에게 그런 재능은 없습니다...... 없는 고로......" 섀도우위브가 송구함을 금치 못했다. "어라, 이것은......?" 유카노는 무슨 검은 전자기기 같은 것을 발견했다. 스위치를 틀자 사이버 테크노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레디오도 넣어두었습니다." "눈치가 빠르시군요."
유카노는 기분 전환을 위하여 튜닝 다이얼을 돌렸다. 격렬한 노이즈가 섞인 음악과 뉴스, 페케롯파 컬트(종교 집단)의 불법 선정 방송 등이 들렸다. 섀도우위브는 이를 자신의 공훈으로 생각하여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이 임무의 책임의 무거움과 자신의 충동 사이에서 강한 갈등을 느낀 끝에, 참지 못하고 이렇게 물었다.
"끔찍하지요, 가이온은...... 인간 사회는. 썩은 냄새를 풍기는 시체입니다. 토할 정도로 더럽고 역겨운, 한 번 불태워야만 할 세계인 것입니다. 이상 세계를 위하여. ......부디, 실례가 아니라면 가르쳐주시길 청합니다, 귀녀의 눈으로는 밤이 어떤 색으로 보이고 있는지를. 인간 사회가 얼마나 비천해 보이는지를."
그가 윗선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유카노가 유서 깊은 드래곤 닌자 클랜의 혈통이라는 것 뿐. 그녀와 숙적 닌자 슬레이어와의 관계를 그는 아직 몰랐다. 섀도우위브에게 이 리얼 닌자는 숭배해야 할 대상이었으며, 밤과 죽음과 용과 파괴와 불사와 지배와 암흑의 상징이었다.
리얼 닌자가 보는 밤은 필시 더러움 없고도 어둡고도 깊고도 아름다울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로드의 성스러움과 죽은 사부 블랙 드래곤이 말한 이상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위계가 오르기 시작한 그는 길드 내에 존재하는 정치적 술수를 깨닫고, 무의식 중에 혐오를 느끼기 시작했던 것이다.
"심심풀이로 이야기 드리지요. 사회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릅니다. 철이 들기 시작하기 전부터 외딴 도죠에서 카라테만 했으니까요. 요즘 노래도 잘 모릅니다. 당신은 어떠신가요?" 레디오를 만지작거리며 대답한다. "노래 따위...... 저속한 인간들이 만들어낸 것 따위 무엇 하나 존경하고 있지 않습니다." 라는 섀도우위브.
"밤은, 귀녀께 있어서 밤은 어떤 것입니까?" 라는 섀도우위브. "밤은 풍림화산 중 하나. 저는 자젠(좌선)하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그것과 하나가 되어, 걷고, 달리고, 도약하고, 죽일 것입니다. ......하지만 쓸쓸함 또한 느낍니다. 홀로 밤을 걷는다는 것은. 그것이 만약 끝없이 반복되는 밤이라면 더더욱 그렇지요."
"그것은...... 어떠한 의미로......" 그가 긴장하며 물었다. "......운치가 없군요." 갑자기 유카노가 쌀쌀하게 말했다. "모, 몹시 실례했습니다." "질렸습니다. 이제 후톤 이불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도망치지 않게 거기에서 망을 보고 있도록 하세요." 이 풋내기 앞에서는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상책으로 보였다.
섀도우위브를 다루는 방법은 대충 알았다. 변덕스러운, 외로운 성의 공주처럼 행동하면 되는 것이다. 정신적 우위에 서있으면 나중에 무언가 도움이 되리라. 유카노는 후톤 이불에 들어가 작전을 짰다. 몇 시간 전의 유카노와는 분명 닌자 존재감이 달라져 있었다. 그녀에게 목적이 생겼기 때문이다.
섀도우위브의 명예를 위해 덧붙이자면, 그는 그저 풍만함과 언변에 매료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닌자 존재감, 아트모스피어에 휩쓸린 것이다. 과연 이 짧은 시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유폐방의 작은 창문에 내려 앉은 커다란 까마귀는 무엇이었던 것일까? ......약간 시간을 되돌려야만 하겠다.
◆◆◆
암살자인가? 닌자 소울의 기척을 알아채자마자 유카노는 무의식중에 주 짓수 자세를 잡고 임전 태세를 갖추며 작은 격자 창문 쪽으로 돌아섰다. 그러나 앰부쉬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허무승 삿갓을 쓴 그 그림자가 곤란하다는 듯한 자세로 아이사츠했다. "도-모, 유카노=상. 저지먼트입니다."
"도-모, 저지먼트=상. 유카노입니다." 방심 없는 아이사츠가 돌아온다. 곧이어 허무승은 눌러 죽인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줘, 유카노=상. 아직 끝이 아니니까. 조급하게 굴지 마. 나에게는 이름이 몇 개 더 있지...... 어디 보자, 저지먼트, 디텍티브, 카라스(까마귀) 닌자......"
윙윙윙윙, 하고 레디오에 이상 노이즈가 섞였다. 그가 조작하는 도청 방지용 불법 재머가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다행히도 도청 장치는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았으나, 탐정이란 이러한 가젯에 집착하는 법이리라. "......타카기 간도, 그리고 닌자 슬레이어의 벗이다."
유카노는 이 볼품없는 허무승 닌자의 행동거지에 작게 미소지었다. 그리고 카라스 닌자...... 어딘가에서 들은 기억은 있지만 떠오르지 않는다. 아니, 그보다 중요한 것은...... "닌자 슬레이어...... 살아있는 거군요?" "아아, 그래. 시간이 없어. 간략하게 이야기하자구. 당신을 돕고 싶어."
"지금?" "성미가 급하네, 오히메사마(공주님). 액션 영화처럼 잘 풀리진 않아. 너무 엄중해. 방법이 없어. 교토성을 조사하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서 말이지. 하지만 당신이 있는 곳은 알았어. 조만간 또 오지. 그러니 성급한 행동은 하지 마. 녀석이 슬퍼할테니까." "그 사람이야말로 성급한 행동은 하지 말라고 전해 주세요."
얼마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유카노와 디텍티브는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교환했다. "......적은 너무나도 강대합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손님으로서 정중하게 대접받고 있으니까요. 행동에 나설 때까지는 순종적인 척을 하도록 하지요." 유카노는 어느샌가 이쿠사 배틀에 나선 표정이 되어 있었다. 긍지 높은 드래곤 닌자 클랜의 표정이.
"행동?" 간도가 묻는다. "자이바츠 섀도우 길드가 잠든 틈에 목을 치겠습니다." "어허어허어허, 꽤나 뒤숭숭한 오히메사마로군. 당신이 그렇게까지 나설 필요는......" "그 자들은 드래곤 닌자 클랜의 마지막 후예를 우롱했습니다. 이유는 충분합니다. 저는 드래곤 유카노입니다. 싸울 겁니다."
잠시 뒤. 간도와 헤어져, 섀도우위브를 상대하고, 다시 후톤 이불에 들어간 유카노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맑게 개여 있었다. 이쿠사 배틀이다. 공성전이다. 가슴이 뛴다. 자신이 누구인지는 차차 되찾으면 된다. 지금은 드래곤 겐도소의 손녀, 드래곤 유카노. 그것이 심플하고 바람직하다.
3
"교토는 훌륭하군요." "정말이네요." "일본인의 마음 그 자체입니다." 밤의 교토성 외곽. 네오 사이타마에서 온 관광객이 인력거를 잠시 멈추게 한 뒤 해자 근처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윽하게 조명이 켜진 교토성을 건너편에서 올려다보며, 그들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기념사진을 찍지요." "좋네요."
두 사라리맨은 오이란 놀이를 즐기다 상당히 취해 있었기에 똑바로 걷지 못하는 상태였다. 다른 고급 오이란 클럽으로 향하던 도중, 밤바람을 쐬며 술을 깨려고 교토성 외곽 버드나무 가도를 관광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이쿠쿠쿠! 이 쯤일까요?" "어이쿠쿠쿠! 좀 더 오른쪽입니다! 교토성이 가려져요!"
"이 근처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습니다요. 시의 관광 조례에 따라......" 인력거 드라이버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시끄럽구만! 팁을 기대하는 거겠지! 얼굴에 쓰여 있어!" 카메라를 준비하던 이타마가 만엔권을 꺼내 뒤로 던졌다. "교토의 역사적 유적들은 훌륭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건 쩨쩨한 자들 뿐이로군!"
네오 사이타마의 취객들이 큰 목소리로 말하는 모습은 실로 운치가 없는 것이었다. "어이쿠쿠! 좀 더 오른쪽......이면 이쪽인가요, 이타마=상!? 그건 그렇고 아까의 오이란의 젖가슴은 참으로." "쇼도무=상, 그쪽은 뒤에요! 위험합니다!" 허리를 반쯤 내린 자세로 카메라를 들고 있던 이타마가 황급히 일어섰다.
"어이쿠쿠쿠! 아이엣!? 아이에에에에에에에!? 아이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 쇼도무 부과장이 해자의 가장자리에서 발을 헛디뎌 그대로 떨어진다. "쇼도무=상!" 이타마가 절규했다. SPLASH! 밤의 고요함을 깨는 물소리. "푸학-!" 쇼도무가 수면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뭐지?" 이타마는 해자의 물속에서 쇼도무를 향해 헤엄치는 창백한 그림자를 보았다. 그 머리에는 형광 핑크색 뿔이 둘. 관광 가이드북에서 봤던 기억이. 다음 순간, 세 마리의 바이오 산갈치가 간헐천을 방불케 하는 기세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공중으로 내던져지는 쇼도무! "아이에에에에에에!"
교토성의 해자를 지키는 무시무시한 파수꾼, 바이오 산갈치들이 그 탐욕스러운 송곳니와 머리에 돋은 섬뜩한 핑크색 촉수로 신선한 먹이를 서로 다툰다! "아이에에에에에!" 사지가 찢어져 괴물의 입안에 던져지는 쇼도무! 해자 가장자리에 주저앉은 이타마가 피보라를 맞으며 실금했다.
그 직후 교토성 쪽에서 한자 서치라이트가 수면을 향해 비춰졌다. 손전등 불빛이 버드나무 가도 쪽에서 몇 개 다가온다. 그들은 검은 양복에 선글라스, 서브머신건을 장비한 모습. 모두가 같은 키에 같은 머리 모양을 하고 있었다. "관광객이십니까?" 그 중 한 명이 이타마에게 묻는다. "하이."
"당신은 카메라로 촬영을 하려고 하셨습니까?" "하이." "여기는 촬영 금지 구역인데요?" "하이." 이타마는 인력거 드라이버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했지만 그는 이미 없었다. "저기, 부과장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만......" "그건 나중에 절차를 밟겠습니다. 교토의 관광법에 따르십시오." "앗하이."
교토성은 세계 각국에서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아이콘적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시민이나 관광객의 출입은 외곽에만 국한되어 내부는 삼엄한 경비하에 놓여있다. 겉으로는 문화유산 보호를 위해서라지만 그 진정한 이유는 이곳이 사악한 닌자 조직, 자이바츠 섀도우 길드의 본거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토성과 자이바츠의 비밀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교활하게 조작된 관광법도, 수백 명으로 구성된 클론 야쿠자도, 바이오 산갈치도, 케이비인 일파에 의한 끊임 없는 감시 체제도 아니었다. 그것은 허실전환법 짓수...... 로드 오브 자이바츠가 사용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힘이다.
그리고 그 힘의 전모를, 닌자 슬레이어와 그 동료들은 아직 알지 못한다.......
◆◆◆
"해서, 외곽부부터 본성까지는 세 겹으로 해자가 놓여 있어. 물속에는 거대 장어야. 얼굴은 카와이이하지만, 가능하면 엮이고 싶지 않군." ......이곳은 어두운 비밀 작전실. 간도는 UNIX 챠부 위에 투영된 와이어 프레임 영상을 가리키며 후지키도에게 적의 본거지의 방어 체제를 설명하고 있었다.
밝혀진 내부 구조는 전체의 30% 남짓. 그것도 정확한 데이터를 입수한 것은 아니고, 간도와 모터 치이사이가 잠입했을 때 수집한 화상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유카노는 지금 어디에?" 후지키도가 물었다. "처음엔 여기였어." 간도가 LAN 직결로 정보를 전송. 유폐탑의 좌표가 깜빡인다.
"그리고 지금은 여기." 간도가 가리킨다. 부지 내 일본식 정원에 세워진 호우류우 템플(호류사) 좌표가 깜빡인다. "지하 자시키 감옥*으로 옮겨졌어. 경비를 보다 엄중하게 하기 위함이겠지." 간도가 방구석에 놓은 허무승 삿갓을 잠깐 보았다. 두 동강이 나서 군데군데가 타들어간 상태였다. "제법 마음에 들었는데 말이야."
*座敷(자시키)는 다다미가 깔린 객실을 말한다. 座敷牢(자시키로)는 그 중 광인이나 죄인을 가둬두는 방을 뜻하는데, 이 번역본에서는 '자시키 감옥'이라고 기재하였다.
"안에 닌자는 얼마나 있지?" "예상도 불가능해. 그랜드 마스터급이 적어도...... 5명 이상." 절망적인 숫자다. "하늘은 어떤가? 세스나 같은 것을 사용해서 직접......" 후지키도가 제안했다. "교토 리퍼블릭의 초계기 편대에게서 빠져나갈 수 있다면 생각해봄직 해. 하지만...... 나는 사양하고 싶군.'
괴로운 상황이다. 인질이 잡혔다는 점에서는 소우카이야를 멸망시켰을 때와 비슷하다. 하지만 그때는...... 그동안 식스게이츠를 차례로 죽이고, 소우카이야를 약화시킬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역시 내가 정면돌파로 유카노를......" "어허어허어허어허, 결국 그거냐고......"
간도가 좀 봐달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무엇 때문에 지난번 구출 작전을 미뤘는지를 기억하라고. ......초조해 하지 마. 기분은 알아. 우리가 해내야만 하는 것은 둘. 자이바츠를 일격으로 박살내고, 동시에 유카노=상을 구하는 것. 그것을 위한 단서를 유카노=상은 몸을 던져 찾고 있잖아?"
간도는 포트에서 맛챠(말차)를 따라 벗 앞에 두었다. "그녀, 기억상실이라고 했었지?" 라는 간도. 후지키도는 헌팅캡을 푹 눌러쓰고는 맛챠를 들이키며 끄덕였다. "기억은 돌아온건가?" "아마도....... 하지만 뭐라고 해야할까. 예전과는 아트모스피어가 다르다. 어딘가 위태로움을 느끼게 해."
"위태로움이라고? 닌자 슬레이어=상, 그거 남일이라고 할 수 있나?" 간도가 웃었다. "계속 그랬지. 내 탐정 사무소에 왔을 때부터, 위태로움 정도가 아니야. 미야모토 마사시의 코토와자...... 뭐라고 했더라...... 『서두르면 죽는다』...... 대충 그런 거야. 서두르면 둘 다 죽을걸."
"미안하군, 그 말대로다." 후지키도가 챠를 마시며 조급해지는 마음을 억눌렀다. 젠 마인드가 중요하다. 겐도소가 있었다면 표현은 달라도 같은 말을 했으리라. "작전을 다시 세워야해. 지난번 통신에 따르면 유카노=상은 어떤 의식 때문에 붙잡혀서 유폐된 상태야." 간도가 캘린더를 투영했다.
"그리고 그 의식이 거행되는 것은, 다음 부츠메츠(불멸일)....... 그때까지는 유카노는 무사할 것, 이라는 이야기였지?" 후지키도는 내심 편치는 않은 기분으로 대답했다. 의식이라는 단어의 울림이 초조함을 자아낸다. "그래, 그 녀석들의 성질로 보아 모든 닌자를 호박 닌자 조각상이 있는 방에 모아두고 벌이는, 성대한 세레머니가 되겠지."
의식의 상세 내용은 불명. 그 결과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정확하게는 불명...... 유카노가 파라곤에게 들은 말을 믿는다면, 이 세상에 지옥이 찾아와서 교토는 불꽃에 의해 타버린다고 한다. 종말을 믿는 종교 집단이 사용할 법한 진부한 상투적인 표현이다. 하지만 그 말을 한 것이 닌자 비밀결사라면 있을 수 없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의식 직전까지는 자이바츠의 약점을 찌를 수 있도록 가능한 한 정보 수집 및 사전 준비를 진행한다. 거기까지는 좋다. 의식 날을 틈타 일을 벌이는 것도 이치에는 맞다. 전체의 경비는 허술해지는 것이 순리. 하지만 결국 문제는 어디부터 어떻게 일을 벌이느냐다. 이대로라면 작전회의는 원점으로 돌아가게 되고 만다.
"그래서, 나와 낸시=상은 여기에 눈독을 들였지." 간도가 챠를 들이키며 가리키자, 지하로 통하는 짐 반입구 중 하나가 깜빡였다. 작은 윈도우가 여러 개 열려서 '틀림없는 업자용' 이라고 간도의 설명을 보충한다. "......이것은?" "요로시상이나 오무라 녀석들이 사용하는 반입로야. 평소에는 두꺼운 격벽으로 잠겨있어."
"하지만 이곳을 해킹으로 여는 것은 힘들기 짝이 없는 기술..." 간도가 말하던 중, 챠부 구석에 있던 모터 치이사이가 갑자기 떠오르더니 "중점! 중점!" 이라며 유카노에게서 통신이 왔음을 알렸다. 시큐리티 문제로 유카노와 통화 가능한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1초도 낭비할 수 없다. 3D 통화 모드가 ON 되었다.
"눈눈눈눈......" 모터 치이사이가 원뿔 형태 홀로그래픽을 투사하고, 자시키 감옥방에 정좌하고 있는 유카노의 모습이 후쿠스케* 정도 되는 크기로 표시되었다. 강렬한 노이즈로 인해 그 피부색은 다소 창백하게 보였지만 눈동자에는 확실히 힘이 깃들어 있다. "두 분 다 들리시나요? 저는 괜찮습니다."
*원문은 フクスケ로, 福助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복을 가져다 준다는 머리가 큰 인형.
간도와 후지키도는 3D 유카노 영상 옆에 인터레이스 주사 방식*으로 표시된 '滿(찰 만)'이라는 거대한 한자에 시선을 향했다. 이 녹색 한자는 통신을 계속하고 있으면 서서히 빨강으로 바뀌며, 그것이 곧 감청 위험도를 나타내는 매우 뛰어난 UGI**인 것이다. "평소처럼 후다닥 해치우자고." 간도가 말했다.
*비월 주사 방식이라고도 한다. 하나의 영상을 홀수와 짝수 가로줄로 나누어 번갈아가며 표시하는 영상 표시 방식
**GUI(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오기로 보이나 확신할 수 없어 수정 없이 각주로 대체한다.
"저부터 말하죠. 자시키 감옥방은 쾌적합니다. 종소리가 다소 시끄럽긴 합니다만." 유카노가 농담을 하듯 말했다. "조금 전 파라곤이 왔었습니다. 의식의 내용에 대해 불안해하는 모습을 내비쳤더니 정중히 대우하겠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의식 후에도 저에게는 중요한 역할이 있다고 하는군요. 인신공양은 아닌 것 같네요."
"좋아, 다음은 이쪽이군." 간도가 말을 받았다. 후지키도는 3D 영상 속 유카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작전 계획이 거의 마무리됐어. 네오 사이타마에서 야바이급 해커인 낸시=상이 원격으로 도와줄거야. ......그렇군, 미안, 낸시=상과는 면식이 없나. 아무튼 해킹이 스고이."
"저는 해킹이나 UNIX에는 익숙하지 않습니다만." 유카노가 말했다. "괜찮아. 원리는 단순. 토스트를 굽는 것보다 간단해. 그쪽의 모터 치비에게 낸시=상이 바이러스를 보낼거야. 여기서부터가 어려운 부분이지. 모터 치비를 데리고 성 내부의 전산실로 숨어들어야 해. 그 다음에는 치비가 알아서 바이러스를 주입할거야."
"전산실로 숨어든다?" 후지키도가 귀를 의심했다. "그래, 그 방법을 지금부터 논의하려고 생각해서 말이지. 처음에는 내가 하려고 했어." 간도가 손을 들었다. "괜찮습니다, 제가 하지요." 라는 유카노. "수단을 가리지 않으면 탈옥 정도는 가능합니다. 찬스는 한 번 뿐입니다만."
"성급하군, 유카노=상." 간도가 말했다. "진짜 결행하는 순간이 오면 낸시=상이 원격 해킹으로 지원해 줄거야. 교토에 경제 공격을 가해서 전산실에 있는 녀석들의 시선을 바깥으로 돌리는 거지. 하지만 아직 확실히 결행하겠다고 결정된 것은 아니야. 요로시상에게서 암호 프로그램을 훔칠 필요가 있어."
"하지만." 이라고 후지키도가 말한 순간, 극비 IRC 단말이 울렸다. 이 IP를 알고 있다는 것은 코케시 사이코우 혹은 낸시 리, 아니면 적...... 간도는 후지키도에게 유카노와 계속 통화하라고 재촉하며, 자신은 단말기를 가지고 방 바깥으로 나갔다. 적에게 유카노의 목소리가 들리기라도 하면 끝장이기 때문이다.
"딥 스로트." 간도가 낮은 목소리로 응답한다. "......붓다! 낸시=상이었냐고. 수명이 줄었어. 그래, 닌자라도 줄어드는 법이야. 해킹 관련해서 무언가 진척이? 그래, 5층탑 쪽은 작업 완료야. 남은 것은 암호 프로그램과 경제 공격...... 뭐라고? 다시 말해줘, 낸시=상!"
......몇 분 전. 교토 시내, 가이온 사우스 에어포트. 오반데스 항공 여객기 퍼스트 클래스에서 사이버 선글라스를 낀 금발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급 마이코 어텐던트(승무원)가 정숙하게 오지기했다. "업무이시와요?" "네에, 슈퍼모델이죠." 라며 그 여자 해커는 악의 없는 거짓말을 했다.
높은 힐의 굽소리를 기분 좋게 울리며 트랩을 건너, 여자는 가이온의 공기를 마셨다. 그리고 가슴에서 개조 IRC 단말기를 꺼냈다. 수많은 불법 프록시 서버를 경유해서, 발신하는 곳은 물론 딥 스로트. "예정 변경. 역시 직접 왔어요." 낸시 리가 말했다. "그 편이 뭐랄까, 빠른 길 아니겠어요?"
역시 보통과는 일선을 달리하는 여자로군, 이라고 생각하면서 간도가 말했다. "안전을 생각해서 비행 예정은 캔슬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거짓말이죠." "알려줬어도 되는 것 아닌지?" "도청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는걸. 적을 속이려면 먼저 아군부터." 낸시가 깔끔하게 받아쳤다. 휘유, 하고 간도는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병상에서 일어난 지 얼마 안됐지? 곧바로 자동차를......" "작전중에 합류하기로 하죠." "성미가 급하구만." 합류할 좌표를 암호로 의논하면서 간도는 방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문을 열기 직전에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어 손잡이에 올렸던 손을 뗐다. 생각해보면 통신로를 확보한 뒤, 후지키도와 유카노는 단 한 번도 단둘이 이야기할 시간을 가지지 못했던 것이다.
간도는 이미 낸시와의 통신을 마쳤다. 유카노의 기억상실과 그것을 대하는 후지키도의 태도를 떠올리며, 언젠가 시키베와 어떠한 형태로든 재회하게 되었을 때 자신도 그런 위화감을 느끼게 될지 문득 생각했다. "몸은 있지만, 기억이 불안불안...... 기억은 있지만, 몸이 불안불안...... 어려운 이야기로구만."
한편 유카노와 후지키도는 필요사항 논의를 모두 마쳤다. 아직 '滿' 미터기에는 여유가 있다. 간도는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유카노, 기억은 이제 완전히 돌아왔는가?" 후지키도가 예전처럼 물었다. "네에, 후지키도. 이제 괜찮아요. 생각이 납니다. 도죠에 대해, 할아버님에 대해......"
후지키도는 그 정중한 말투 속에서 또 위화감을 느꼈다. 예전의 그녀는 조부 겐도소에게 물론 예의 바르게 행동했지만, 그 외의 사람에게는 좀 더 싹싹하고...... 18세 소녀다운 자유분방한 태도였을 터. "할아버님에 대해서는 알고 있습니다." 유카노가 말했다. "무언가 남기신 말은 없으셨는지요?"
후지키도는 기억을 더듬었다. 그녀의 변화는 단순히 성장에 따른 것일지도 모른다고 고쳐 생각하면서. "......유카노를......잘 부탁한다고." "그 외에는요?" "아무 말도." 라는 후지키도. "그렇군요." 유카노는 그 대답을 듣고 조금 기뻐보였다. '滿' 미터기가 위험 수준에 이르러 경고음이 울린다.
경고음을 들은 간도가 방으로 들어오자 이미 회선은 끊어져 있었다. 몇 km 떨어진 호우류우 템플 지하에서는 유카노가 정좌한 상태로 조부 드래곤 겐도소와의 나날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가 기억하는 이가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것에 행복을 느꼈다.
의식의 날이 다가온다. 닌자 슬레이어, 타카기 간도, 낸시 리, 드래곤 유카노는 자이바츠를 전복시키기 위하여 차근차근 준비를 진행했다. 소 파, 소 굿*. 그들의 뇌리에는 희미한 승리의 비전마저 생겨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간도는 묘한 두근거림을 느꼈으나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so far so good, 아직까지는 잘 되고 있다는 뜻.
그리고 전산실 침입 계획 결행 전날 밤. 그 막연한 불안감은 꿈이라는 형태를 취하고 드래곤 유카노의 로컬 코토다마 공간에 나타났다. 불타 무너졌을 터인 드래곤 도죠 속에 홀로 정좌한 유카노. 그녀의 앞에 이상할 정도로 깡마른 장신, 장발 닌자가 나타나서 아라크니드라고 자신의 이름을 댄 것이다.
4
방울벌레가 우는 밤. 교토성 부지 내에 세워진 호우류우 템플. 그 지하 자시키 감옥에 유카노는 갇혀 있었다. 작전 결행을 하루 앞두고, 그녀는 고급 후톤 이불에 몸을 눕혀 잠에 들었다. 자신의 몸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잠들 수 있는 것은 곧 그녀의 강인한 닌자 정신력의 덕분이었다.
조부이자 사부, 드래곤 겐도소는 일찍이 그녀에게 말했다. 자신의 정신이나 감정을 제어하고 평상심을 유지하는 것의 중요성을. 헤이킨 테키라 불리는 정신 수련 중 하나다. 그녀는 조부 겐도소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잠들어, 드래곤 도죠의 꿈을 꾸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불청객이 나타난 것이다.
꿈을 꾸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오늘 밤 꿈속에서 유카노는 드래곤 도죠에 서있었다. 그리온 도죠 안을 걸어다녔다. 닌자 클랜 조각상. 벽에 붙은 쇼도와 군기. 레디오에서 새어나오는 멀리 떨어진 시가지의 전파. ......모든 것이 몇 년 전 그대로. 그녀의 기억 속에 있는 드래곤 도죠 그대로였다.
"밥을 차려야 하는데......" 취사장을 향해 유카노가 멍하니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죠의 어디를 봐도 겐도소나 뉴비들의 모습은 없었다. 돌아올 기미도 없었다. 곧 그녀는 이것이 꿈임을 깨달았다. 그러자 갑자기 후스마 도어가 열리고, 본 적 없는 남자가 도죠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도-모, 아라크니드입니다." 거미집 모양의 검은 키나가시*를 입은 키가 크고 깡마른 체구의 사내가 쉰 목소리로 아이사츠했다. 닌자 복면과 긴 머리카락에 가려져서 그 표정은 알기 어려웠다. "도-모, 아라크니드=상, 드래곤 유카노입니다." 그저 꿈이라고 생각하며 그녀는 아이사츠를 돌려주었다. 하지만 곧 위화감을 느꼈다.
*원문은 キナガシ로, 着流し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남자의 일본 옷차림에서 하카마를 제외한 약식 복장.
(((이 닌자 클랜은 이미 맥이 끊긴지 오래지만, 다른 사람의 꿈에 숨어드는 기괴한 짓수가 머나먼 과거에는 존재했단다......))) 일찍이 그녀에게 마키모노 스크롤을 읽어주던 겐도소의 목소리가 로컬 코토다마 공간 안에 울려퍼진다. 유카노는 조용히 주 짓수 자세를 취했다. "......저를 죽이러 왔나요?"
그것만으로도 아라크니드의 윤곽은 흐려져,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그는 피를 토하며 다다미 위를 기었다. "아니야. 불쌍한 아라크니드를 괴롭히지 마. 적의가 담긴 눈으로 아라크니드를 보지 마. 아라크니드도 갇힌 몸이다. 로드 오브 자이바츠와 그의 부관 파라곤을 죽이기 위해 이렇게 꿈을 건너온 것이다."
"꿈을 건너?" 유카노는 주 짓수 자세를 풀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깡마른 닌자가 힘이 다해 죽는 것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시야 속 풍경이 바뀌고, 두 사람은 토코노마에 마주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래, 여기는 당신의 꿈 속이지. 바라기만 하면 언제든 이 거미를 걷어차버릴 수 있을 거야."
"당신은 누구입니까?" "아라크니드는 가련한 닌자다. COFF! COFF! 길드에서 도주하려다 감옥에 갇혔지. 여기보다 더 아래, 지하 자시키 감옥의 가장 깊고 어두운 곳에서 등의 살점이 갈고리에 걸려 매달려 있다." "마치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듯 말하는군요." "아라크니드의 정신은 무너졌다. 깨어 있는 동안에는 광인이지."
유카노가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그렇다면 당신은 아라크니드가 아닌 건가요?" "아라크니드는...... 아니라고 생각해. 그런 가련한 괴물이......" 그것이 말했다. "결말이 나질 않는군요. 돌아가시겠나요?" 유카노가 다완을 내려놓는다. "하지만 아라크니드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닌자 슬레이어는 죽게 되겠지."
간도에게 들은 정보에 따르면, 정확무쌍한 점괘로 자이바츠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수수께끼를 방불케 하는 닌자가 있었을 터...... 그 자의 이름이 분명 아라크니드. "......조금 더 이야기를 듣겠습니다." 유카노는 그렇게 말하고, 찻주전자를 가지러 장롱 쪽으로 향했다. 벽에 붙어 있는 '헤이킨 테키'라는 쇼도 경구가 그녀를 타이른다.
"닌자 슬레이어는 로드 오브 자이바츠를 이길 수 없어. 살해당하겠지. 무참하게도. ......그건 곤란해. 아라크니드는 도망칠 수 없어. 영원히 계속 이용될거야. 이제 싫어. 이제 싫어......" 그것이 품에서 화투 타로를 꺼내어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만지며 말했다. "그 점괘는 정말로 절대적인가요?"
"아라크니드의 화투 타로는 마루노우치 항쟁 49일 전에 닌자 슬레이어의 탄생을 예언했어. 라오모토 칸을 죽이는 자가 탄생할거다, 라고. 아라크니드의 점은 정확해. 이를 아는 사람은 아라크니드와 로드 그리고 파라곤 뿐이야. 그 두 사람이 지향하는 이상 세계라는 것은 일그러져 있어."
"그러면 어떻게 해야 점의 결과가 달라지나요? 어떻게 해야 닌자 슬레이어는 죽지 않을 수 있습니까?" 유카노가 묻는다. "허실전환법 짓수를 무너뜨리지 않는 한, 절대로 로드에게 이기지 못해." "어떻게 하면 그것을 무너뜨릴 수 있겠습니까?" "......어째서 그걸 깨닫지 못했을까? 그걸 점치자. 지금 여기서."
아라크니드는 화투패를 신비로운 형태로 늘어놓고, 그 중심에 패산을 쌓았다. 그리고 정신을 집중하여 떨리는 손끝으로 카드를 뒤집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었다! ZMZMZMZMZM...... 갑자기 바닥과 벽과 천장에 녹색 격자 무늬가 나타나고, 그 중심에 불길한 '罪(죄)' '罰(벌)'이라는 한자가 무수히 출현하여 눈알을 방불케 하듯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죄와 벌은 각각 자이, 바츠로 읽을 수 있다.
"뭣?" 제아무리 유카노라 한들 역시 당황했다. 나무삼! 은폐된 진실에 너무 다가선 것이다! 허실전환법 짓수의 그물망이다! 로드 오브 자이바츠가 쳐둔 초자연적 그물망! "코와이(무서워)! 코와이!" 아라크니드가 화투 타로를 뒤집으며 소리친다. "이노시시(멧돼지)! 카메(거북이)! 릴리(백합)! 웨이스트랜드(황무지)!"
"데드문 온 더 레드 스카이! 역위치의 릴리! 역위치의 황제! 탑! 드래곤! 타나카! 역위치의 라이온!" 피가 섞인 기침을 토하며 타로 카드의 이름을 외친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무의식과 망각의 그물망에 붙들려 간다! "罪罰罪역위치罰의罪罰罪罰罪罰! 罪罰罪罰罪罰의罪罰罪罰행드 맨罪罰罪罰"
"罪罰罪罰罪罰의罪罰罪罰罪罰罪罰罪罰...... 보였다! 罪罰罪罰罪罰罪罰罪罰로드 오브 자이바츠의 罪罰罪罰罪罰罪罰罪罰罪罰 에는, 罪罰罪罰罪罰罪罰罪罰罪罰罪罰......은색 열쇠罪罰罪罰罪罰罪罰의罪罰罪罰罪罰罪罰罪罰......" 꿈속에서 罪罰罪罰 유카노의 시야가 罪罰罪罰罪罰罪罰罪罰罪罰罪罰罪罰罪罰......
......두 사람은 차를 홀짝이며 마주 보고 토코노마에 앉아 있었다. "COFF! COFF!" 아라크니드가 피가 섞인 기침을 토했다. 유카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언가 아주 중요한 것을 잊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무엇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애초에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더라...... 그렇지. "그 점괘는 정말로 절대적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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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크니드는 화투패를 신비로운 형태로 늘어놓고, 그 중심에 패산을 쌓았다. 그리고 정신을 집중하여 떨리는 손끝으로 카드를 뒤집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었다! ZMZMZMZMZM...... 또 다시 바닥과 벽과 천장에 녹색 격자 무늬가 생기고, 그 중심에 불길한 '罪(죄)' '罰(벌)'이라는 한자가 무수히 출현하여 눈알을 방불케 하듯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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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토코노마에 앉아 있었다. 아니, 아라크니드는 다다미 위를 기며 피기침을 토해내고 있었다. 유카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언가 아주 중요한 것을 잊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무엇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애초에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더라...... 그렇지. "그 점괘는 정말로 절대적인가요?"
"COFF! COFF! 절대적이다. 아라크니드가 뽑는 화투 타로는 언제나 동일. 운명에 돌을 던지지 않는 한 항상 같은 결과가 기다린다. 마루노우치 항쟁 49일 전부터 닌자 슬레이어의 탄생을 예언했어. 라오모토 칸을 죽이는 자가 탄생할거다, 라고. 아라크니드의 점은 정확해. 이를 아는 사람은......"
"그러면 어떻게 해야 점의 결과가 달라지나요? 어떻게 해야 닌자 슬레이어는 죽지 않을 수 있습니까?" 유카노가 묻는다. "허실전환법 짓수를 무너뜨리지 않는 한, 절대로 로드에게 이기지 못해." "어떻게 하면 그것을 무너뜨릴 수 있겠습니까?" "......어째서 그걸 깨닫지 못했을까? 그걸 점치자. 지금 여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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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 제아무리 유카노라 한들 역시 당황했다. 나무삼! 은폐된 진실에 너무 다가선 것이다! 허실전환법 짓수의 그물망이다! 로드 오브 자이바츠가 쳐둔 초자연적 그물망! "코와이(무서워)! 코와이!" 아라크니드가 화투 타로를 뒤집으며 소리친다. "이노시시(멧돼지)! 카메(거북이)! 릴리(백합)! 웨이스트랜드(황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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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토코노마에 앉아 있었다. 아니, 아라크니드는 피기침을 토하고 누워서, 해변에 던져진 참치마냥 입을 뻐금뻐금거리고 있었다. 유카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언가가 일어났다. 하지만 떠오르지 않는다. 애초에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더라...... 그렇지. "그 점괘는 정말로 절대적인가요?"
"COFF! COFF! 오곡! 오고옥-! COFF! COFF! 아라크니드의 화투 타로는 마루노우치 항쟁 49일 전부터 닌자 슬레이어의 탄생을 예언해서......" 그는 괴로워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 말을 유카노가 막았다. 주변을 미심쩍다는 눈으로 보면서. "......무언가 다른 이야기를 하도록 하지요."
......그래, 그거면 됐어. 지금은 아직. 그거라도 충분해. 잘 해줬어.
잘 부탁해.
"다른 이야기를 하자고? 어째서?" 아라크니드가 묻는다.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유카노가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닦으며 장롱으로 향했다. "그리고 몹시 몸상태가 나빠보이는군요. 약을 준비하겠습니다. 저는 약초 조합법도 배웠지요." "상냥한 사람이로군." "제 꿈속에 갑자기 들어와서 죽어버리면 곤란하니까요."
"리얼 닌자라는 것은 더 거룩하고도 무자비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라크니드따위, 인간이나 마찬가지인 쓰레기 벌레나 뭐 그런 것으로 보지 않을까 싶었어." "저는 기억이 없습니다. 수천년을 살았다느니 하는 말을 갑자기 들어도 곤란합니다. 저는 드래곤 겐도소의 손녀, 드래곤 유카노입니다. 그것으로 충분해요."
유카노가 조제한 약을 다 먹은 아라크니드는 다소 침착함을 되찾았다. 우라나이(점치기) 짓수는 체력과 정신력을 현저하게 소모시키는 것이다. 벽에는 격자도 한자도 나타나지 않고, 그저 클랜의 심볼인 웅장한 드래곤 수묵화가 날카롭게 적을 주시하여 상대를 위압하는 것만 같은 눈으로, 혹은 수호자를 방불케 하는 눈으로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심심풀이로 말상대를 해주세요." "하이." 아라크니드가 다소 맥이 풀린 듯이 대답했다. "당신은 어떻게 제 꿈에 들어왔나요? 짓수지요?" "유메아루쿠(꿈 걷기) 짓수. 멀리 떨어져 만날 수 없었던 헤이안 시대의 귀족 닌자들이 만들어 냈다고 하는 짓수다. 주파수를 맞추기가 어렵지."
"자세하군요, 역사에." "가련한 아라크니드, 원래는 연구자였다. 닌자 연구자다. 비행장에서 닌자 소울에 빙의됐다. 비행 스케쥴 전광판의 글자가 갑자기 일부를 남기고 사라졌지. 타면 죽는다, 라고 그만은 읽어낼 수 있었다. 역시나 아라크니드가 탈 예정이었던 비행기는 추락했다."
"......그리고 아라크니드는 자이바츠에게 발견되었다. 자이바츠는 아직 지금 정도의 세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점궤의 힘을 높게 평가받고, 로드와 파라곤을 섬겼다. 고사기의 예언에 따라 닌자 밀레니엄을 이끌 것이라고 그들은 말했다. 가련한 아라크니드는 속았던 것이야." "속았다?"
"에도 시대 말기부터 이어진 비밀결사? 거짓이야. 허실전환법 짓수로 만들어낸 거짓이야. 그들은 서두르고 있어. 시계 바늘을 억지로 말법을 향해 돌리려고 한다. 모조품 말법칼립스를 향해! 그들은 교토성의 비밀을 알았다! 최종 전쟁을 위해 만들어진 무시무시한 닌자 오파츠의 비밀을!"
그러나 그는 로드나 파라곤의 정체에 대해서는 언급할 수 없었다.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오파츠...... 그것이 의식과 관련되어 있는 겁니까? 저를 사용해서 치룬다던." "의식! 의식! 의식! 아라크니드가 미치지 않았더라면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었을 것을! 기억을 파괴당한다는 것은 지고쿠 헬이나 마찬가지다!"
"COFF! COFF!......킨카쿠 템플(금각사)이다." 아라크니드가 열심히 기억의 실을 더듬으며 말했다. "교토성은 킨카쿠 템플에 대항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결전 병기야......" "킨카쿠 템플......!" 유카노는 조부 드래곤 겐도소에게 들었던 닌자 신화의 한 부분을 떠올렸다.
"과거 닌자들은 교토의 킨카쿠 템플에서 일제히 하라키리(배 가르기) 리츄얼을 행하여 황금의 소울을 발할라로 보냈다...... 다가올 최종 전쟁을 위하여." 유카노가 조부의 말을 복창했다. 바로 이 도죠에서 했던 말을. "킨카쿠 템플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거미가 말했다.
"다른 하나는?" 유카노가 묻는다. "카츠 완소의 소울이 도망쳐 들어간 곳. 오히간에 떠 있는 황금 입방체. 교토의 물리적인 킨카쿠 템플은 그것을 모방하여, 케곤 폴* 절벽 위에 헤이안 시대에 지어진 것...... 아라크니드는 그것을 호우류우 템플의 마키모노 스크롤에서 해독해냈다."
*원문은 ケゴン・フォール로, 게곤 폭포(華厳滝, 우리나라에서는 화엄 폭포라고도 한다)에서 따온 것으로 보이지만 이 폭포는 교토가 아니라 도치기현에 있다.
오히간이란 삼도 리버 너머에 있다고 하는 사후 세계 혹은 비물질적 세계를 가리키는 일본어로, 아노요라고도 불린다. 신성한 오봉절 밤에는 모탈의 세계와 오히간이 연결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고-온, 고-온, 에브리원 고-온, 에브리원 고-온 비욘드......" 거미는 붓다의 성구를 읊었다.*
*오히간은 피안을 뜻하며, 삼도 리버란 삼도천을 이른다. 아노요란 저세상을 말한다. 아라크니드가 읊는 성구는 '반야심경'의 영문판으로, 한국에서는 보통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라고 산스크리트어로 외우는 부분인데 그 뜻은 '가자 가자 넘어 가자, 모두 넘어가서 무한한 깨달음을 이루자'는 것이다.
"대답하세요, 그 킨카쿠 템플과 교토성이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겁니까?" "교토성은 모조품 킨카쿠 템플로 변한다. 그리고 찾아오는 것은...... 헬 온 어스...... COFF! COFF! 오곡-!" 아라크니드가 다시 한 번 피기침을 토했다. 윤곽이 흐려지기 시작한다. 격자 무늬는 나타나지 않는다.
"괜찮습니까? 지금 약을......" 유카노가 옆에 앉아, 그 풍만한 가슴으로 수척한 거미를 부축했다. "가능하다면 좀 더 막연하게 생각해줘, 상냥한 사람...... 짓수가 끊어지고 있는 거야. 이론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COFF! COFF! 꿈이...... 깬다......" 아라크니드의 몸은 무게를 잃고 소멸했다.
유카노는 떠올렸다. 이것은 꿈이라고. 드래곤 도죠의 그리운 다다미 냄새가, 촉감이, 추고쿠 지방의 바람 소리가, 챠의 맛이, 사라져 간다...... 뉴런이 만들어낸 잠깐의 환영이. 하지만 꿈에서 완전히 깨어나기 직전, 그녀는 아라크니드가 있던 자리에서 '은색 열쇠'라고 피로 쓰인 문자를 보았다.
5
"은색...... 열쇠......!" 유카노는 지하 자시키 감옥에서 깨어났다. 이마에 배인 땀. 작고 날카롭게 숨을 내쉬고 눈을 번쩍 부릅뜨며 즉시 각성한다. 벽에 걸린 전자 둥근 창이 잔잔한 밤의 죽림을 비추고, 전자 합성된 풍류가 느껴지는 방울벌레 울음소리와 함께 바깥의 시각이 밤임을 알리고 있었다.
빠르고도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유카모는 모터 치비의 통신 기능을 기동시켰다. 눈눈눈...... 정십이면체 디바이스가 떠올라 홀로그래픽 영상을 비춘다. 그 끝에는 상처 투성이인 닌자 슬레이어와 디텍티브. "이쪽 준비는 끝났다." "낸시=상이 다른 장소에서 스탠바이하고 있어."
"이쪽도 움직이겠습니다." 라는 유카노. "치비에게 바이러스 전송은 끝났어." 라는 간도. "1시간 후에 낸시=상이 경제 공격을 개시한다." 라는 후지키도. 통신 유예 시간을 나타내는 '滿' 한자가 빠르게도 붉은색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불길한 꿈을 꿨습니다." 라는 유카노.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그 사실을 전해야만 할 것 같아서였다.
"꿈? 하지만 남은 시간이 야바이해." 라는 간도. 그것을 막는 유카노의 목소리. "지하 자시키 감옥 깊숙한 곳에 있는 아라크니드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로드의 허실전환법 짓수를 무너뜨리지 않는 한......" 유카노의 심장이 무겁게 고동친다. 후지키도가 죽는다. "......승산은 없다고. 그를 타파하기 위한 단서는...... 은색 열쇠."
"은색 열쇠?" "그렇습니다, 그 이상은 알 수 없습니다." 유카노가 몹시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허어허, 퀴즈 방송인가? 그게 대체 무슨......" 붕대로 한쪽 눈을 가린 간도가 과장된 몸짓을 지었다. "은색 열쇠." 후지키도는 그 운명적인 단어를 복창하면서, 목에 단 오마모리(부적)에 자연스럽게 손을 뻗고 있었다.
지직지직지직...... 통신에 노이즈가 섞인다. 홀로그래픽 영상이 슬라이스된 사시미마냥 좌우로 흔들렸다. 유카노의 심장이 다시 무겁게 고동쳤다. 다음 통신 기회가 있을지는 불명. 이번 생에서 이별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그 사실이 각오를 강요한다. "후지키도." 유카노가 작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왜 그러지?" 닌자 슬레이어가 대답했다.
유카노는 질 나쁜 데자뷰를 느끼고 작게 심호흡했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어쩌면 몇십 번이나 이렇게 이별을 루프해왔던 것이 아닐까 하는 예감. "할아버님을 기억하시지요?" "물론이다." "다음에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래." "제가 또 기억을 잃더라도, 제가 누구인지 알려주세요."
후지키도가 대답하려 한 순간, 모터 치이사이에 탑재된 물리 파이어월(방화벽)이 파괴되어 연기를 뿜고, 위험 회피 프로그램이 작동하면서 회선은 자동으로 절단되었다. 유카노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작전 결행 시간까지의 잠시 동안 지하 자시키 감옥에서 자젠(좌선)했다. 겐도소의 가르침과 블랙헤이즈의 말을 되새긴다.
잠시 뒤 유카노는 긍지 높은 드래곤 닌자 클랜의 마지막 후예로서 일어섰다. 맵시 있는 일본옷을 벗고, 장롱에서 꺼낸 간소한 닌자 복장을 입었다. 그것이 심플하고 마음에 들었다. 거울 앞에 서서 녹슨 카라테를 되찾기 위해 간단하게 준비 운동을 했다. 정신과 육체의 젠 균형을 확인한다.
유카노는 자시키 감옥의 튼튼한 쇠창살을 도전적으로 응시했다. 아쉽게도 그것을 파괴할 정도의 카라테는 없다. 그러나 이 자시키 감옥이 산시타는 침입 불가한 영역이었으며, 상시 감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 그녀에게는 불행 중의 다행이었다. 그리고 적은 유카노의 결단력과 실행력을 얕잡아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행운에 따른 발견이었다. 유카노는 챠부에 놓인 요코부에*를 불었다. 쥐가 한 마리 나타나서 헤어지기 아쉽다는 듯이 울었다. 유카노는 '불여귀'라 쓰인 쇼도에 다가가 그것을 옆으로 치웠다. 흙벽에 나타난 것은 그녀가 자신의 손으로 파놓은 쥐구멍! "따라오세요." 라고 유카노가 어딘가 즐거운 듯이 모터 치비에게 명령했다.
*일본의 악기로 횡적이라고도 한다. 가로로 들고 부는 피리.
나무아미타불! 족자를 위장 수단으로 삼다니 이 어찌나 대담하고도 교활한 작전! 이것이야말로 드래곤 도죠 마지막 후예에 걸맞는, 리얼 닌자의 지혜였다. 과거 에도 시대에도 붙잡혀 자시키 감옥에 감금되었던 리얼 닌자들 대부분은 이 전통적인 수단을 사용하여 실제 홀연히 자취를 감췄던 것이다.
'깨달음'이라고 적힌 스피리추얼 족자가 어긋나고, 옆 지하 감옥의 토코노마에 유카노가 모습을 드러냈다. 에도 시대에 버려진 그곳은 몹시 황폐화되어, 대들보에는 수백년은 된 오래된 거미줄이 께느른하게 늘어져 있었다. 유카노는 녹슨 쇠창살을 어렵지 않게 떼어내어, '출입금지'라고 적힌 팻말 옆을 빠져나갔다.
자시키 감옥이란 귀족들을 유폐하기 위하여 헤이안 시대에 고안된 무자비하고도 풍류가 있는 프리즌 시스템이다. 토코노마와 화장실, 샤워실 등을 갖춘 넓은 고상식 다다미방이 수인들에게 주어지기 때문에 실제 쾌적하기는 하나, 주위를 튼튼한 나무 혹은 쇠창살이 에워싸고 있기 때문에 애니멀을 방불케 하는 굴욕감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유카노는 어두운 무인 복도로 나섰다. '순탄한 길'이라고 위압적으로 적힌 쇼도가 왼쪽으로 향하는 화살표와 함께 붙어, 지상으로 나가는 탈출로를 알리고 있었다. 한편 오른쪽을 보면 보다 어두운 암흑. 그곳을 엄중하게 지키고 있는 쇠창살 앞에는 '금지인' 이라고 적힌 팻말이 세워져 있었으며, 나무로 만든 울타리와 붉은 밧줄. 그 끝에는 아라크니드가 있는 층으로 가는 계단.
당장 아라크니드를 만나러 가면 또 다른 단서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나, 작전 결행까지 남은 시간이 적을 뿐더러 유카노에게는 쇠창살을 파괴할 수단도 없었다. 물리 자물쇠를 풀기 위한 닌자 툴도 가지고 있지 않은데다, 또한 이 쇠창살은 최신 UNIX 복합형이라 쉽지 않을 듯했다. 유카노는 허리를 반쯤 낮춘 자세를 유지하며 왼쪽으로 갔다.
지하 던전에 흐르는 미세한 바람을 살피며, 유카노는 리얼 닌자의 발걸음으로 조심스럽게 전진했다. 벽에는 강화수지로 만든 장대한 연표가 볼트로 고정되어 있어, 마치 피라미드 회랑을 방불케 하듯, 교토성의 건조부터 근대까지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었다. 모터 치비는 불안하게 그녀의 앞뒤로 날아다녔다.
T자 삼거리에서 유카노는 적의 기척을 알아차렸다. 앞에는 비슷한 복도가 이어지고 있고, 왼쪽으로 돌면 지상층으로 이어지는 사다리가 있다. 사다리 좌우에는 붉게 옻칠된 전투적인 붓다 조각상이 우뚝 서있고, 그 앞에는 머신건을 들고 있는 클론 야쿠자가 둘 경비를 서고 있었다. 유카노는 치비에게 손짓하여 비밀 커맨드를 보냈다.
눈눈눈눈...... 연산을 시작한 치비가 구동음을 냈다. "뭐얌마-......?" 희미한 소리를 눈치챈 클론 야쿠자들은 T자 교차로 정면의 막힌 곳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유카노의 손바닥에 땀이 밴다. 직후, 파라곤의 홀로그래픽 영상이 투영되었다. "도-모." 클론 야쿠자들은 반사적으로 오지기했다.
유카노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T자 교차로의 그림자 속에서 소리도 없이 도약하여, 재빠르게 두 발의 수리켄을 던졌다! "이얏-!" ""끄악-!"" 그것은 오지기 완료 직후의 클론 야쿠자들의 목덜미에 꽂혀 그 중 하나를 즉사시켰다. 다른 야쿠자 한 명이 총을 쏘려고 했으나 유카노는 재빠르게 그의 배후로 돌아들어갔다.
유카노는 적의 등 뒤에 밀착하면서 탄력있고 부드러운 그 팔을 채찍처럼 목에 휘감아, 손상된 목을 완전히 박살내려 했다. 이것은 전설의 카라테 기술, 쵸크 슬리퍼!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야쿠자! 전력으로 발버둥치며 저항한다! 유카노는 허리를 낮게 숙이며 더욱 무자비하게 조였다! 10초 후, 클론 야쿠자는 생명 활동을 정지했다.
"이제 됐어." 유카노가 치비에게 말하자, 조잡한 정지 홀로그래픽 영상이 01 노이즈가 되어 사라졌다. 어두운 지하였던데다, 상대가 클론 야쿠자였기에 속일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이리 간단하게는 되지 않을 것이다. 유카노는 오랜간만의 살해 감촉을 곱씹으며 적이 휴대하고 있던 도스 대거를 빼앗고 사다리에 올랐다.
◆◆◆
교토 성내, 스모크드 실버 다실. 벽과 기둥에는 고급스러운 검은색이 칠해져 있어서 은빛 다도 도구와 은박 비욘보가 뿜어내는 고귀한 럭셔리함을 돋보이게 한다. 예로부터 일본에서 은색은 죽음을 암시하는 엄숙한 색이며, 옛 다이묘들은 종종 이쿠사 배틀 전날 밤에 이 다실에서 젠을 방불케 하는 사생관(死生觀)을 다시 묻고는 했다고 한다.
차솥을 마주보고 앉은 것은 다크닌자와 니드호드. 방구석에 놓인 은도금 워타누키* 장식품이 멍해보이는 얼굴로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다크닌자 쪽은 교범을 방불케 하듯 아름다운 정좌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에 반해, 니드호그는 노란색 키나가시를 아무렇게나 흐트리고, 무릎을 세워 사케라도 마시는 듯한 모습.
*원문은 ワータヌキ로, 늑대인간을 의미하는 werewolf의 타누키(너구리) 버전으로 보인다. 즉 were-tanuki=너구리인간.
물론 니드호그의 이 자세는 정식으로 챠를 나누는 절차에서는 인정되지 않는 것이다. 다른 그랜드 마스터들과의 다과회에서는 결코 보이지 않는, 솔직하면서도 실례인 자세다. 그는 터놓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은연중에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로드께서 거행하신다는 대의식이라는 것은 대체?))) 다크닌자가 묻는다. (((글쎄, 이 어르신도 들은 것이 없어서 말이지))) 니드호그가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두 사람은 슬로핸드와 퍼거토리가 그랬던 것처럼, 복잡한 암호와 은어, 하이쿠와 몸짓 등을 섞어가며 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파라곤은 알고 있을 터))) (((그렇겠지. 어떻게 빌붙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놈은 로드의 심복이니까 말이야. 지금쯤 귀족 파벌 녀석들도 어딘가에서 다과회를 하고 있을 게다))) 니드호그가 오카키를 집어들었다. (((흥미가 없다는 듯한 말투로군))) (((이 어르신은 세세한 것에는 구애받지 않아서 말이지)))
니드호그는 챠를 따르고 말을 이어갔다. (((통쾌한 이쿠사를 할 수 있다면 토노사마(영주님)가 누구든 개의치 않으니. 로드는 이 어르신에게 그것을 약속하셨다))) (((당신답군))) (((그대는 어쩔 셈이지? 다크닌자=상이여. 응, 양의 탈을 쓰고 있는 것은 끝이 아닌가. 뭘 노리지? 로드의 목인가?)))
니드호그가 이야기의 핵심에 다가갔다.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 그는 두말하는 법이 없고, 의식의 상세한 내용에 대해서도 흥미가 없다. 다만 자이바츠가 역사적 전환점을 맞을 정도로 중요한 대의식이며, 그 앞에 대 이쿠사 배틀이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냄새는 맡고 있다. 다른 파벌 또한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다크닌자는 챠를 한 잔 마시고 다완의 바닥을 응시하다가, 정좌 자세를 무너뜨렸다. (((로드의 목 같은 것에 흥미는 없다. 그렇다 하여 당신 같은 전투광도 아니지. 나는 꺼림칙한 운명의 멍에에 속박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을 유유낙낙 따를 생각 또한 없어))) (((그대의 운명이란 것은?))) (((......강림의 그릇!)))
◆◆◆
호우류우 템플을 탈출한 유카노는 나리코 트랩과 감시 장치에 주의를 기울이며 부지 내 소나무숲을 살금살금 걷고 있었다. 치비의 입체 맵을 투사하여 가야할 경로를 재확인한다. 그녀의 전투능력은 자이바츠로 따지자면 대략 어뎁트급. 닌자와의 전투는 가능한 한 피해야 한다.
그녀는 템플의 전시실에서 빼앗은 활과 화살을 메고, 허리에는 네 자루의 도스 대거를 차고 있었다. 전대미문의 대의식을 앞두고 교토성 전체가 무겁고도 사츠바츠(살벌)한 공기에 휩싸여 있는 듯했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 다실을 오가며 정치적 모략에 매달리고 있다. 그것이 유카노에게 유리하고 작용하고 있었다.
교토성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갈수록 중요도가 높아지고 경비도 삼엄해진다. 서쪽부터 차례로 비지터(visitor) 구역, 정원, 춤추는 몽키 구역, 중앙 성벽, 중앙 정원(보물고, 호우류우 템플, 감시탑 등의 중요 문화재가 있다), 그리고 혼마루다. 혼마루에는 천수각, 무수한 다실, 호박 닌자 조각상의 방, 전산실 등이 있다.
즉 그녀는 경비가 삼엄한 동쪽으로 일부러 가야만 하는 것이다. 물론 작전 수행 후에는 가능한 서쪽을 통해 탈출을 꾀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바람은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것일지도 몰랐다. 소나무에 오른 유카노는 짓수로 움직이는 신장 6미터의 청동 붓다 조각상들이 서쪽 성벽 부근에서 활보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유카노는 동쪽을 향해 소나무숲 속을 나아갔다. 이따금 2인조로 보초를 서는 클론 야쿠자를 화살 연사로 살해하면서.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다. 설령 상대가 야쿠자라도 경보를 울리면 매우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그녀는 별채 주위를 교활하게 우회하여, 서쪽의 넓은 복도로 접근했다.
혼마루는 엎어지면 코 닿을 데다. 하지만 직접 건물 사이 복도를 지나는 것은 지나치게 위험하다. 유카노는 아래에서 흐르는 산수화를 방불케 하는 개울로 눈길을 돌렸다. 소리도 없이 도약하여 개울가 등롱에 몸을 감춘다. 클론 야쿠자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유카노는 '나무삼보'라 적힌 노보리 플래그 뒤로 걷다가, 우회 경로로 혼마루로 향했다.
하지만 그녀는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건물 사이 복도의 지붕 위에서 코마이누 가고일과 나란히 서서, 미동도 없이 침입자를 계속 감시하고 있던 이 무시무시한 파수견을. "똑딱똑딱똑딱똑딱"......그것은 개울가의 어둠 속으로 사라진 유카노가 있는 방향을 향해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확인한 뒤, 크게 도약하여 사냥감의 뒤를 쫓았다.
◆◆◆
(((......강림의 그릇? 그런가, 그대는 하가네 닌자의 소울을 그 몸에 깃들이고 있었지.))) 니드호그가 대답했다. (((내가 말하는 강림의 그릇이란 하가네 이야기가 아니다))) 후지오가 상세한 내용을 밝혔다. (((나는 카츠 완소의 닌자 소울을 부활시키기 위한 강림의 그릇, 육체 주머니, 소울을 끌어오는 파이프가 될 운명)))
(((카츠 완소라니, 그거 참 터무니 없는 이야기로군! 애당초 실재했는지도 수상쩍어. 붓다를 되살린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로구나))) 니드호그가 다시 껄껄 웃었다. 그 얼굴에는 유쾌하다는 표정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하가네가 나에게 남긴 저주다." 다크닌자가 내뱉듯이 말했다.
"하지만 유유낙낙 그것에 따를 마음은 더더욱 없다. 태어나기 전에 정해진 운명 따위." "그렇다면 어떻게 할 거지?" 니드호그가 접은 쥘부채로 다크닌자를 가리켰다. 후지오는 다시 목소리를 죽이고 그윽한 암호로 대답했다. (((......내가 벌일 이쿠사 배틀은, 로드가 일으킬 이쿠사 배틀보다 아득히 사악하고도 거대할 것이다)))
몇 초 간격을 두고 그 의미를 알아챈 니드호그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작게 웃었다. 지금까지의 웃음과는 다른, 뱃속에서부터 솟아오르는 듯한 웃음이었다. 다크닌자 또한 이글이글 빛나는 니드호그의 뱀을 방불케 하는 눈을 바라보면서 작게 웃었다. 광인 놈, 이라고 마음 속으로 혼잣말을 하면서.
6
혼마루 내부의 미궁 같은 회랑을, 유카노는 소리도 없이 조용히 지나갔다. 곳곳에 사운드 트랩이 설치된 나무 판자 복도를 이렇게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것은 즉 그녀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 유카노는 소울 빙의자가 아니다. 그녀는 드래곤 닌자 클랜의 리얼 닌자인 것이다.
와이어 프레임 UNIX 게임을 방불케 하듯, 어두운 복도는 L자 혹은 T자로 군데군데가 꺾여있었다. 유카노가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로 모퉁이를 돌자, 그 앞에는 조심성 없는 침입자를 현혹하는 같은 모양의 회랑이 다시 출현했다. 좌우에는 무수한 후스마 도어가 늘어서 있었으나 정보가 부족하여 가벼운 마음으로 이 방들에 침입할 수는 없었다.
유카노가 속도를 줄이지 않는 까닭은 작전 결행까지의 시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십 분하고 조금 뒤, 낸시 리가 교토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에 페이크 전뇌 공격을 개시한다. 유카노는 이와 연계하여 치비를 전산실에 풀어놔야만 한다. 예정대로라면 이미 유카노는 전산실 앞에 도착했을 터였다.
늦어진 까닭은 추격자를 뿌리쳐야만 했기 때문이다. 유카노는 기괴한 네발짐승 같은 파수견 닌자가 자신의 흔적을 쫓아오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전산실이 목표라는 것을 알게 되면 이 작전은 실패한다. 벽에 걸린 로드의 친필 쇼도, '급할수록 돌아가라'라는 코토와자가 그녀를 비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T자 커브 막다른 곳을 향해 달려가는 유카노. 오른쪽인가, 왼쪽인가. 망설이고 있을 시간은 없다. "똑딱똑딱똑딱......" 섬뜩한 소리가 수십 미터 후방에서 유카노의 발걸음에 딱 붙어 추적해온다. 정신을 집중한다. 경로만 생각하면 왼쪽. 하지만 왼쪽에서는 또 다른 닌자 소울의 기척! 그녀는 직전에 재빨리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얏-!" 유카노는 회전 점프로 벽을 박차고, 잠깐이었으나 왼쪽의 적을 확인하며 오른쪽으로 돌아 들어갔다. 또 한 명의 추적자의 그림자가 어렴풋이 보였다. 멜빵바지를 입고 손도끼를 든 체구가 큰 닌자...... 레드 클리버였다. 그의 머리에는 워치독과 마찬가지로, 인간성을 봉인한 것 같은 섬뜩한 멘포가 씌워져 있었다.
유카노에게 있어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들은 자아가 없는 자동 살인자였다. 증원을 부를 위험성은 적은 반면, 손대중이라는 단어를 모른다. 유카노는 초조함과 고통으로 약간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혼마루에 침입하기 직전, 워치독과 개울가에서 교전했을 때 왼팔에 상처를 입은 것이다. 카라테의 역량 차이는 역력했다.
유카노는 비인도 병기, 마키비시를 거침없이 뿌리며 긴 복도를 달려 나갔다. 하지만 과연 저 이형의 닌자를 상대로 어느 정도의 효과를 발휘할 것인가. "치비, 경로 정보를." "눈눈눈......" 유카노의 앞에 3D 홀로그래픽으로 지도와 남은 시간이 표시되었다. '절망적인' 이라는 내비 정보와 함께.
◆◆◆
좌우의 벽에 수십 개의 작은 촛불이 흔들리는 어두운 작은 방. 하얀 인체공학 UNIX 체어에 앉아 자젠을 방불케 하는 정신 집중을 시도하고 있던 것은, 검은 캣 슈트 차림의 여해커. 낸시 리였다. 카운트다운을 이어가던 그녀의 사이버 선글라스의 액정 화면이 00:00:00을 표시했다.
와-오-와-오-와-오-! 교토 전산실에 경고음이 울리고 전자 본보리 램프가 회전한다! "뭐얌마-!?" "까고자빠졌넴마-!" 방한복을 입은 클론 야쿠자들이 철망형 바닥 위를 분주하게 뛰어다닌다. "뭐야, 이건?" 중앙 전략 챠부에 앉은 여닌자는 원인 규명을 계속 시도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스토커=상, 왠 소란인가?" 갑자기 전산실 천장이 열리고 또 한 명의 닌자가 자신의 방에서 전산실 안으로 훌쩍 착지했다. 이 남자야말로 그랜드 마스터 위계 닌자, 비질런스였다. 스토커라 불린 여닌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교토 주식시장에 대한 경제공격입니다."
비질런스는 안경을 고쳐 쓰고 전략 챠부 위에 띄워진 수십 개의 화면에서 정보를 읽어냈다. 그 눈 밑에는 깊은 다크서클. 그는 24시간 체제로 교토 경제를 감시, 필요에 따라 조작하는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그는 LAN 직결자가 아니므로 스토커 같은 충실하고 유능한 조수를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까지 돌파되었지?" "제7논리 파이어월이 뚫릴 때까지 앞으로 수십 초입니다." 스토커가 새로운 화면을 열어 그를 향해 돌린다. 내친김에 조금 전까지 플레이하고 있던 게임 화면을 몰래 닫는다. 자이바츠의 비밀에 접근한 시민을 인터넷을 통해 철저히 마크하여 파멸로 몰고 가는 악랄한 게임이다.
"......왜 더 빨리 손을 쓰지 않은겐가?" 비질런스가 시리어스한 말투로 물으며 의자에 앉자, 스토커에게서 전략 챠부 메인 타이핑 권한을 가지고 왔다. 화면만을 보면서, 방해라는 듯 손을 옆으로 밀어 조수를 일어나게 했다. "순식간에 돌파당했습니다." "순식간에? 제6논리 파이어월까지?"
조수의 말을 별안간 믿을 수는 없었지만 설마 그녀가 그런 뻔한 거짓말을 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전략 챠부에 비치된 4개의 물리 키보드와 그 위에 투영된 녹색 홀로그래픽 키보드 2개를 고속 타이핑하여 그는 적의 공격 이력을 분석했다. 그 결과는 "......YCNAN이라고!?"
"YCNAN!" (((그 빌어먹을 암여우...!))) 스토커가 혀를 차고, 아름다운 얼굴이 한순간 증오로 추악하게 일그러졌다. YCNAN은 네오 사이타마의 전설적인 여해커로, 지금까지도 몇 차례 교토 IRC에 침입을 꾀했다. 스토커가 몇 번이나 추적을 시도했으나 그녀는 항상 꼬리를 잡히지 않고 도망친 것이었다.
비질런스는 자신의 상자 정원과도 같은 시장을 조사했다. 다행히 아직 피해는 없다. 하지만 이대로 제7, 제8의 논리방벽이 무너지면 제어권을 빼앗기게 되어 시장이 대혼란에 빠지리라. "바이러스 요격은 불가능한가? 적의 IP는?" "아직입니다. 불법 프록시 서버를 여러 개 경유하고 있습니다." "역시 보통내기는 아닌가!"
"제7방벽 함락이와요." 전자 마이코 음성이 울려퍼진다! "아바바바밧-!" 뇌 개조를 받은 노예 해커 2명이 코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이건 네오 사이타마로부터의 선전포고로군." 비질런스가 안경을 고쳐 쓰면서 말했다. "좋다. 모든 제어권을 나에게 집약시켜라! 내 이코노믹 카라테를 보여주마!"
◆◆◆
한편 그 무렵, 유카노는 아직 전산실에 도착하지 못했다. 우회 경로를 선택했다가 워치독에게 추월당해 다시 도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순간 투척한 도스 대거를 대신해서 복도에 걸린 사이를 들고, 군데군데의 장롱에서 수리켄과 마키비시 등을 보급하면서 쉴 새 없이 달린다.
유카노는 이동 속도를 계산하고 있었다. 워치독과 그녀의 속도는 거의 비슷. 레드 클리버는 약간 느리다. 일단 다른 층으로 이동해서 워치독만을 아슬아슬할 때까지 유인해서 1대1 이쿠사 배틀에 도전한다. 2대1로는 승산이 없지만 워치독만이라면 해치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억지스럽지만 이젠 시간이 없는 것이다.
긴 복도를 달리는 유카노. 점점 그 속도가 떨어진다. 사냥감을 잡을 호기라 판단한 워치독은 신나게 이빨 소리를 울리며 빠른 걸음으로 단숨에 거리를 좁혔다. 코와이! 하지만 이것은 유카노의 책략이었다. 워치독이 크게 도약하여 덮친 순간, 그녀는 뒤로 몸을 돌리며 사이를 투척했다!
"끼엣-!" "끄악-!?" 워치독의 옆구리에 사이가 꽂혔다. 그러나 얕다! 역시 카라테가 모자라단 말인가. 덮치기 공격의 기세는 죽지 않고, 그대로 유카노가 있는 곳을 향해 날붙이 형태로 된 앞다리가 내리 휘둘린다! 아부나이! 유카노는 순간적으로 옆 장지문에 뛰어들어 긴급 회피를 시도했다! "이얏-!"
다다미 냄새가 유카노를 맞이한다. 다행히도 그곳은 무인 트레이닝 룸! 벽에는 다양한 무기가 걸려 있었고, 오래 사용한 목인이 여러 개 늘어서 있었다. 유카노는 연속 옆구르기를 구사하여 벽에 걸린 나기나타를 잡고 자세를 취했다. 조금 전의 일격에 왼쪽 허벅지에 얕은 상처를 입어 닌자 복장이 찢어져서 하얀 허벅지가 드러나 있었다.
"똑딱똑딱똑딱......!" 워치독은 사냥의 기쁨을 드러내며 유카노를 향해 다가온다! "이얏-!" 유카노는 나기나타로 날카로운 찌르기를 날렸다! "이얏-!" 워치독은 날카로운 사각뿔 형태 금속 앞다리로 이것을 튕겨낸다! "이얏-!" "이얏-!" "이얏-!" "이얏-!" 일진일퇴의 공방!
유카노는 긴 무기의 리치로 우위에 선 것처럼 보였으나, 그것은 성급한 계산이었다. 적의 전투 능력은 역시 그녀보다 아득히 높았고, 나기나타 공격을 가볍게 처리하면서 당장이라도 필살의 덮치기 공격을 감행하려 하고 있다. 사이 투척 앰부쉬는 불발. 게다가 상대는 광견을 방불케 하는 자동 살인자...... 미인계도 통하지 않으리라.
워치독이 나기나타의 칼등에 달라붙어, 무기를 빼앗으려고 기세 좋게 목을 비틀었다. 자세를 무너뜨리면서도 저항하는 유카노. 뒤이어 왼쪽 후방의 천장에서 불온한 삐걱이는 소리! 직후 천장이 파괴되고 레드 클리버가 위층에서 숏 컷으로 도착! 나무아미타불! 성의 내부 구조를 알고 있는 적의 풍림화산이다!
"우활!" 뒤를 돌아본 순간 손아귀의 카라테가 약해지는 바람에 그녀는 나기나타째 끌려가 쓰러졌다. 무방비한 상태로 워치독의 기괴한 머리를 바로 아래에서 올려다본다. 그 직후 예리한 사각뿔의 끝이 유카노의 두 눈 사이를 노리고 사정없이 내리쳐진다! "이얏-!" 옆으로 굴러서 종이 한 장 차이로 회피!
"이얏-!" 유카노는 브레이크 댄스를 방불케 하는 움직임으로 빈틈을 없애면서, 나기나타를 바닥에 닿을락말락하게 휘둘러 적의 접근을 막으며 재빠르게 일어섰다. 어깨를 사용하여 나기나타를 돌려, 오른쪽 겨드랑이로 자루를 고정하고 좌우의 적을 번갈아 노려본다. 적은 유카노가 서 있는 위치를 축으로 삼아 조금씩 옆걸음으로 선회하며 약간씩 거리를 좁혀온다!
모터 치비가 불안하게 위를 날아다닌다. 유카노는 무겁고도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서두르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만다. 아니,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생각이 흐려진다. 닌자 슬레이어와 그 동료들은 죽고, 드래곤 닌자 클랜은 끊어지고 마는 것인가. "바앗-!" 침묵을 깨고 오른쪽 측면에서 그녀를 베려 드는 레드 클리버!
◆◆◆
스모크드 실버 다실. 니드호그는 이미 다른 파벌에 대한 견제 및 상태를 살피기 위하여 다크닌자 곁에서 떠나 있었다. 대신에 다크닌자와 마주 앉은 것은 섀도우위브. 전혀 정치에 익숙하지 않은 그의 챠도 프로토콜은 완전히 미숙하여, 그 나이에 걸맞게 어색했다.
"그러면 드래곤 유카노는 닌자 슬레이어의......!" 섀도우위브의 목소리에 참담한 심정이 배어나온다. 그는 오늘 처음으로 유카노의 내력을 들은 것이다. (((사부의 원수의 동료에게 마음을 허락하고 있었다니 이 무슨 우활한. 블랙 드래곤 사부도 아노요에서 나를 내려다 보며 완전히 경멸하고 계시겠구나!)))
(((여자의 교활함에 속았단 말이더냐!))) 상상 속 마스터의 질책이 레이지의 뇌 안에서 에코 재생된다. 유카노와 닌자 슬레이어와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로 두 손이 떨려 다완을 떨어뜨릴 뻔했다. "케지메를 시켜...... 주십시오." "그만둬라, 비합리적이다." 다크닌자가 차갑게 말했다.
"하지만." "놈과의 이쿠사 배틀을 위해 아껴두고 있어라. 그 때는 가깝다. 놈은 교토성에 반드시 쳐들어온다." 다크닌자가 카타나 같은 눈으로 섀도우위브를 응시했다. "교토성에 정면 돌파라니...... 제정신으로 벌일 짓이라고는." "놈은 그런 사내, 그런 광인인 것이다. 그리고 그 광기가 소우카이야를 멸망시켰다."
"...알겠습니다." 섀도우위브는 원수에 대한 순수한 증오로 여러 생각을 억누르며 깊이 도게자하고 방에서 물러났다. (((약함을 버려라, 섀도우위브. 모든 인간성을 버려라......! 그렇지 않으면 복수는 이룰 수 없다. 진정한 닌자가 되어라. 자비 없는 그림자의 화신이 되어라......!))) 그렇게 뇌 속에서 반복하면서.
잠시 후 다크닌자는 챠를 내려놓고 둥근 장지문을 열어 하늘 꼭대기의 달을 바라보았다. 칼집에 담긴 벳핀이 조용히 운다. 이쿠사 배틀이 가깝다. 하지만 그것은 후지오 카타쿠라에게 있어서 통과점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거기에서 죽는다면 그뿐...... 하지만 그의 눈은 더욱 더 앞을 내다보고 있었다. 훨씬 광활한 미래를.
다실에 작은 회오리바람이 일고, 사자춤 탈을 방불케 하는 모습의 닌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스터 크레인. 벳핀의 소지자를 카츠 완소의 그릇이라는 운명으로 이끄는, 두 오토마톤 중 하나. "오랜만이군." 다크닌자가 말했다. 크레인이 대답했다. "전처럼 자주는 조언을 드리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마스터 토터스가 멸망했기 때문이겠지." 라는 다크닌자. "그 말씀대로입니다. 그는 미래를 보았습니다...... 그다지 멀리까지는 보지 못했습니다만. 따라서 저 혼자서는 짐이 무겁습니다." "로드와 파라곤은 무엇을 꾸미고 있지?"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헬 온 어스는 이렇게 빨리 도래할 리 없었을 것입니다."
"의식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나?" 다크닌자가 묻는다. "지금은 아직 대답할 때가 아닙니다. 불확실한 것은 대답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마스터 크레인은 공손하게 오지기하고, 몸을 회오리바람으로 감싸기 시작했다. 퍼플 타코가 복도에서 다실 후스마 도어를 노크했을 무렵, 마스터 크레인의 모습은 홀연히 사라져 있었다.
◆◆◆
"바앗-!" 레드 클리버가 힘껏 커다란 손도끼를 내리쳤다. "이얏-!" 유카노가 교묘한 나기나타 컨트롤로 이것을 회피했지만, 등 뒤에서 레드 클리버와 연계하는 워치독에 의해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바앗-!" 무거운 도끼자루 일격이 그녀의 머리를 강타! "응앗-!" 자세가 무너진다! 나무아미타불!
뇌진탕을 일으키는 유카노. 모든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된다. 공격에 휘말린 것인지, 모터 치비가 프레임이 파괴되어 팔치에서 굴러다니고 있다. 등 뒤에서 날아오는 워치독의 공격을 간신히 피하기는 했으나 다리와 허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눈앞에 레드 클리버의 묵직한 돌려차기가 다가와, 유카노를 날려버린다!
"응앗-!" 대포에서 발사된 서커스 고양이처럼, 유카노의 부드럽고도 우아한 몸이 벽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간다! 사츠바츠! 이를 악물고 격통을 견디며 쇼크 흡수 동작을 시도하는 유카노. 하지만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벽 앞에 놓인 거대한 징과 격돌! 따당-! 묵직한 징소리가 울려퍼진다!
은행 금고를 연상시키는 커다란 징에 등을 기댄 채 허리부터 떨어지는 유카노. 양손 양다리를 축 늘어뜨리고, 고개를 기울여 공중을 바라보는, 부서진 죠루리와도 같은 자세. 징의 진동이 몸을 흔들고 뇌를 흔든다. 격통이 온몸을 누빈다. 그리고 작전 실패의 굴욕. 게다가 드래곤 닌자 클랜의 혈맥 또한 끊어지는 것인가.
"하악-, 하악-......" 숨이 흐트러진다. 유카노의 눈동자는 망가진 디지털 카메라처럼 중점-비중점을 반복했다. 흔들리는 시야에 비치는 것은 유유히 접근하는 두 이형의 닌자. 그 모습은 사막의 신기루로 떠오른 거인과도 같다. 011100중독당한 클레오파트라11011처형대에 오르는 잔 다르크011011
0010이건 무슨?01010유카노의뉴런의 속도가 위험 지역에 도달한다1010011원격 기억 장치에서 흘러드는 노이즈0010101111킨카쿠 템플에 장치된 백도어01011101다크닌자에게 살해당한 겐도소010101011네부카드네자르의 습격01011
정신의 징을 때려서 울리는 것처럼 유카노는 갑자기 깨달았다. 자신이 지금까지 몇 번이나 죽었다는 것을. 그것은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기억의 죽음, 인격의 죽음이었다. 그것은 무한에 가까운 시간을 살아가기 위하여 그녀가 선택한 자기보호 수단. 그리고 다시, 견디기 힘든 절망이 그녀의 앞에 나타나 기억을 지우려 하고 있다.
곧 겐도소의 손녀 드래곤 유카노의 기억과 인격은 완전히 죽으리라. 다음 인격이 되어 깨어난 유카노는, 혹은 다른 누군가는, 이 장지문을 뚫고 날아가 지붕 위를 굴러 자이바츠 닌자에게 보호받게 될것이다. 그리고 로드에게 기대어, 다가올 닌자 밀레니엄의 지배자가 된다.
"싫어!" 유카노는 뉴런 안에서 울부짖었다. 드래곤 유카노의 기억이 주마등 리콜을 일으키며 흔들린다. 저항을 시도한다. 상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 "누구냐!" 항상 냉정한 눈으로 계속 기억과 인격을 봉인하여 죽여온 것은 누구더냐! ALAS! 사형 집행자 또한 자기자신이라니! "......후지키도옷-!" 절규가 멀어진다.
......"스읍-, 하악-, 스읍-, 하악-" 유카노의 호흡이 바뀐다. 그것은 암살권 챠도의 호흡. 미숙했기에 조부 겐도소에게는 끝끝내 배우지 못했을 터였던 오의! 닌자 신진대사가 가속하고, 싱싱한 피가 체내를 누비며, 얕은 상처를 막아간다. 그리고 조용히 일어섰다.
이형 닌자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처치했다고 생각했던 사냥감에게 아직 움직일 힘이 남아있다. 두 닌자는 즉시 몸을 돌려, 애니멀을 방불케 하는 울음소리와 함께 달려들었다! "스읍-, 하악-, 스읍-, 하악-" 유카노는 주 짓수 자세를 갖추고, 적을 유인해 도발하듯 대각선 뒤쪽으로 자잘한 스텝!
"바아아앗-!" 유카노의 몸을 양단하기 위하여 손도끼를 치켜드는 레드 클리버. "똑딱똑딱똑딱!" 부드러운 피부를 물어뜯으려고 침을 흘리며 빠르게 걸어오는 워치독! 바야흐로 여기까지인가!? 그러나 그 순간, 유카노는 레드 클리버의 머리를 향해 제트 로켓을 방불케 하는 폭발력과 함께 날카로운 각도로 도약했다!
(((용의 둥지로 유인하라. 준비 동작. 힘을 모은다. 용의 눈. 목표를 겨냥한다. 갑작스러운 폭풍과도 같이! 도약!))) "이이이이야아아아앗-!" 그것은 드래곤 닌자 클랜에 계승되는 전설의 암흑 카라테 기술, 드래곤 토비게리(날아차기)! 명중! "끄악-!" 레드 클리버의 머리가 후방으로 180도 회전한다!
적의 등 뒤, 다다미 10장만큼 떨어진 위치까지 날아가, 가르침대로 완벽한 자세로 회전 착지한 그녀는 뒤쪽을 돌아보았다. 워치독은 심상치 않은 닌자 존재감을 느끼고 신음소리를 내며 자세를 갖추었다. 유카노는 주 짓수 자세를 고쳐 잡고, 한 줄기 눈물을 흘리면서도 웃으며 아이사츠했다. "도-모, 드래곤 닌자입니다."
7
"!" 인체공학 UNIX 체어에 앉아있던 낸시의 머리가 해머로 얻어맞은 것처럼 심하게 가로로 흔들렸다. 코카소이드 인종의 하얀 피부 위로 선명한 코피가 흘러 침과 섞인다. 팽개쳐진 손다리가 바들바들 떨린다. 후스마 도어를 열고 간도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어허어허어허, 야바이한데, 치비가 박살났어."
간도는 무방비한 낸시의 물리 육체를 보며 이마를 손으로 누르고 마잇따(곤란하다) 포즈를 취했다. "어허어허어허, 이쪽도 야바이군......" 그리고 즉시 낸시의 UNIX 설비에 LAN 직결하여 메세지를 보냈다. 정신통일로 완전한 트랜스 상태에 들어간 낸시에게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DEEPTHROAT :TAKAGI:유카노=상은 아직인가?
#DEEPTHROAT :YCNAN:보다시피요.
#DEEPTHROAT :TAKAGI:코피가 난다고.
#DEEPTHROAT :YCNAN:묵직한 바이러스를 먹었을 뿐. 아직 파이어월은 뚫리지 않았어요.
#DEEPTHROAT :TAKAGI:벌써 8분이나 계속하고 있어. 타임 업이야.
#DEEPTHROAT :YCNAN:아직 할 수 있어요.
#DEEPTHROAT :TAKAGI:형세도 불리하잖아?
#DEEPTHROAT :YCNAN:네오 사이타마의 불법 프록시를 물려놔서 무거워서 그래요.
#DEEPTHROAT :TAKAGI:배드 뉴스를 들을 시간이야, 치비가 파괴됐어.
#DEEPTHROAT :YCNAN:완전히?
#DEEPTHROAT :TAKAGI:아직 PING은 고동치고 있어.
#DEEPTHROAT :YCNAN:그러면 앞으로 5분만 더 해보죠.
#DEEPTHROAT :TAKAGI:4분이야. 댁의 PING이 야바이해.
#DEEPTHROAT :YCNAN:병상에서 이제 막 일어난 탓. 5분만 줘요. 내가 4, 그녀의 몫으로 1.
#DEEPTHROAT :TAKAGI:고집이 세군.
#DEEPTHROAT :YCNAN:슬슬 불똥이 튈 거에요.
"아우치!" 간도가 재빨리 자신의 LAN 케이블을 뽑았다. 단자에서 파직파직 불꽃이 튄다. 총격전 속을 달려서 빠져나오는 것처럼 간도는 무의식중에 양손으로 머리를 싸맸다. 천천히 방어를 풀고, 고위 해커들의 싸움에 한숨을 내쉰다. 대화는 LAN 접속한지 불과 5초만에 끝났다.
◆◆◆
한편 그 무렵 교토성은. 드래곤 닌자의 날아차기가 레드 클리버의 목을 180도 회전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비장의 카드인 모터 치비는 비행 기능이 파괴당해서 바닥에서 약하게 LED를 깜빡이고 있었다. "비행 불가 중점...... 비행 불가 중점...... 모터 치비가 끼여 있지 않은지 확인해 주세요 지금......"
"똑딱똑딱똑딱......!" 워치독은 생각을 멈추고 사냥 동물을 방불케 하는 빠른 걸음으로 돌진해 온다! 드래곤 닌자는 물 흐르는 듯한 움직임으로 벽에 걸린 사이를 잡아, 팔을 채찍처럼 휘두르며 투척! "이얏-!" "끄악-!" 날카로운 사이가 멘포를 뚫고 워치독의 왼쪽 눈에 명중한다!
하지만 적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는다! 사냥감을 노리고 크게 덮치기 공격! (((드래곤 클로 츠메(발톱). 이것은 창을 방불케 하는 춉일지니. 팔을 창으로 만들어라))) 그녀의 뉴런에 인스트럭션이 되살아난다. (((아니다, 근육을 굳히지 마라. 리치가 원 인치 줄어든다. 힘을 담는 것은 적의 육체를 관통하는 한순간...)))
"끼엣-!" 드래곤 닌자는 재빠른 앞구르기로 적의 품에 파고들어 앞다리 공격을 피하더니, 그대로 창을 방불케 하는 춉을 머리 위로 내찔러 워치독의 심장을 깊게 도려냈다! 드래곤! "사요나라!" 폭발사산하는 워치독! 왼쪽 전방에서는 레드 클리버가 머리를 돌려 다시 큰 손도끼를 든다!
드래곤 닌자는 한쪽 손을 앞으로 내밀어 손짓하며 도발 자세를 취했다! "방금의 앰부쉬는 몇 점 이었으려나!?"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눈물을 흘리며 웃고 있었다. 그 목소리는 결연했으며, 모종의 달관이 느껴졌다. "바아아아앗-!" 미친 듯이 날뛰며 레드 클리버가 정면에서 돌격!
"스읍-, 하악-!" 그녀는 유유히 챠도 호흡을 하면서 대각선 뒤쪽으로 조금씩 백 스텝을 밟았다. 나뭇잎이 흩날리며 떨어지는 것처럼 조용히. 그 직후! "이이이야아아앗-!" 제트 로켓을 방불케 하는 폭발적 예각 날아차기가 다시 적의 머리로 일직선! 드래곤! 드래곤! 머리가 270도 회전!
"사요나라!" 레드 클리버는 폭발사산! 유카노는 적의 배후 다다미 10장 거리에 이상적인 착지를 해냈다. 겐도소의 가르침대로. 일찍이 자신이 만든 기술을, 그가 다시 가르쳐주었던 것이다. 그녀는 겐도소가 진짜 할아버지가 아니라는 것을...... 두 번째 상실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감사했다.
유카노는 천장의 구멍을 노려보며 내달려, 치비를 재빨리 안고 위층으로 도약했다. 작전 결행 시간은 마이너스. 그럼에도 그녀는 아직 시도할 생각이었다. 아지트에서 긴급 통신은 없음. 작전이 계속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최악의 가능성은 아지트의 UNIX와 낸시가 한꺼번에 폭발 인시던트에 휘말렸다는 것이지만 그런 사태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얏-!" 유카노는 좌우 벽에서 솟아나는 사스마타 트랩을 교묘하게 회피하면서 전산실을 목표로 했다. 드래곤 닌자로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녀의 뉴런에 어디에서인지 막대한 기억이 홍수와도 같이 흘러들고, 그리고 많은 것이 흘러나갔다. 물리적 용량 한계를 넘었기 때문이리라.
따라서 그녀의 카라테는 아직 불완전했다. 이 앞에는 기억의 디스크 조각 모음을 방불케 하는 위험하고도 어려운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드래곤 닌자야! 그리고 드래곤 유카노야!))) 그녀는 눈물을 닦고 웃었다. 그녀에게 있어 그 사실은, 여전히 충분히 심플하고 마음에 드는 것이었다.
유카노는 마침내 전산실 앞에 도착했다. 치비를 내민다. LAN 케이블 촉수가 뻗어나와 잠금장치를 해제한다. 내부의 냉기가 밖으로 새어 나온다. 문 너머의 기척을 살핀다. 절규와 폭발음이 들린다. 아직 교전중인가? 유카노는 문을 조용히 당겨, 오부츠단(불단)을 방불케 하는 UNIX 메인프레임이 늘어선 어두컴컴한 방으로 숨어들었다.
"아이에에에에! 아이에에에에에에! 삐가-삐-가가삐-!" 구속용 인체공학 의자에 앉아 병행 LAN 직결된 노예 해커들이 눈을 까뒤집으며 벌벌 떨고 있었다. 그 중 한 명은 전직 사라리맨인 이타마. 이마의 수술 상처가 아프다. 그들은 완전히 자아를 파괴당하고 타이핑 머신이 되어버렸다.
"보았느냐! 나의 이코노믹 카라테를! 교토시장의 수비는 완벽하다! 팔이 저릿저릿하구나! 적도 제법이야! 게이트키퍼 수준은 아니지만!" 비질런스가 이상 흥분을 일으킨 듯 외치는 목소리가 전략 챠부 쪽에서 들려온다. 클론 야쿠자가 소화기를 들고 달려와 폭발한 UNIX 소화에 나섰다. 이 혼란은 딱 좋다.
유카노는 이 혼란을 틈타서 방구석에 있는 목표 UNIX에 소리도 없이 접근했다.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클론 야쿠자를 피하고, YCNAN을 향한 욕설을 중얼거리면서 곳곳의 UNIX에 LAN 직결을 하며 돌아다니는 스토커를 교묘하게 회피하면서. 그리고 케이지 위로 뛰어올라 치비를 설치했다.
"눈눈눈눈..." 치비는 가느다란 LAN 촉수를 뻗어, 케이지 빈틈으로 빠르게 UNIX와 직결했다. 모니터 오른쪽 하단에 녹색의 작은 바가 나타나서 1%부터 서서히 숫자를 늘려간다. 잠복형 바이러스를 흘려넣고 있는 것이다. 유카노의 역할은 끝났다. 그녀는 치비를 쓰다듬고, 도망치는 토끼와도 같이 전산실에서 도주했다.
모터 치비를 전산실에 남겨두고 유카노는 더욱 내달렸다. 이 작전의 최종 목적지를 위장하기 위해서다. 마치 처음부터 전산실이 아니라 천수각으로 향하고 있던 것처럼 생각하게 만든다. 유카노는 곧장 계단을 뛰어올라 회랑을 건너, 자이바츠 닌자들이 모임을 가지고 있는 다실 옆을 달려나갔다.
서서히 추격자의 기척이 늘어난다.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그랜드 마스터급 닌자 소울의 위압감이 무겁게 압력을 가한다. 유카노의 이마에 땀이 밴다. 자신의 힘이 어디까지 통할지 확인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천수각으로 가는 길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유카노는 광대한 다실에서 사방을 포위당했다.
다실 중앙을 내달리는 유카노. 하지만 사방의 후스마 도어가 동시에 활짝 열리더니, 한자 서치라이트의 빛과 함께 2다스에 가까운 닌자의 실루엣이 나타났다. 게다가 북쪽에는 다크닌자와 니드호그. 남쪽에는 케이비인. 동쪽에는 퍼거토리와 슬로핸드. 그리고 서쪽에는 파라곤. 만사휴의의 형국이다!
"깨어났는가, 리얼 닌자. 의식 전날 밤에 탈옥이라니, 설마 또 설마로군." 파라곤이 한 걸음 앞으로 내딛었다. 마치 자신이 로드의 대변자이며, 모든 그랜드 마스터 중 가장 높은 위치임을 과시하듯이. "로드가 아직 제게 얼굴을 한번도 보이지 않았다는 그 시츠레이에 짜증이 나서 말이죠." 유카노가 웃었다.
"닌자 6기사 중 하나, 위대한 소가 닌자의 소울이 깃든 우리 로드께서는 더없이 고귀한 분이시기에......" 파라곤이 공손하게 오지기했다. "나는 드래곤 닌자. 닌자 6기사 중 하나. 수천년을 살아온 리얼 닌자." 유카노가 대답했다. 작은 탄성이 일어난다. 파라곤이 웃었다.
"의식이 시작되면 모든 것이 로드님의 손에 들어올 겁니다. 그때까지는...... 시츠레이임을 알면서도 구속하도록 하겠나이다." 파라곤이 그랜드 마스터들에게 눈짓했다. "......시집가기 전날 같은 기분이군요." 유카노가 주 짓수 자세를 잡고,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는 미소로 저항 자세를 취했다. "다시 말해, 흥분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상처를 입으실 겁니다." 파라곤이 비웃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정중하게 말했다. "기억은 돌아왔을지 몰라도, 귀녀의 힘은 잃은 채이니." "......설령 그렇더라도." 유카노는 용의 눈으로 사방에 위협의 눈빛을 보내며 선언했다. "나는 더 이상 가만히 앉아있지는 않겠다!" 직후, 몇 개의 그림자가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같은 시각, 전산실에서는. 바이러스 주입을 완수한 치비가 힘이 다해 폭발하여, UNIX 메인프레임 케이지 위에서 남모르게 PING을 끊고 있었다. 전략 챠부 주변에서는 YCNAN의 위협을 격퇴한 것을 축하하며 비질러스와 스토커 그리고 클론 야쿠자들이 반자이 챈트를 반복하고 있었다.
◆◆◆
몇 시간 후, 딥 스로트 비밀 아지트의 작전 회의실.
아직 대미지가 남았음에도 닌자 슬레이어, 디텍티브, 낸시 리가 돌입 작전 전의 마지막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간도가 전략 챠부 위의 와이어 프레임을 거두고 브리핑을 마친다. "......이상이다. 금붕어 가게와의 연락은 끝났어. 돌격용 UNIX 밴 준비 완료야."
"그 외의 안건은?" 낸시가 묻는다. "있다." 닌자 슬레이어가 말했다. "유카노=상이 보낸 수수께끼의 메시지 말이다만. 은색 열쇠...... 그것은 즉, 이것을 가리키는 것이겠지." 전략 챠부 위에 놓이는 물리 열쇠 하나. "지금부터 말하는 이야기는 갑자기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겠으나......" 후지키도가 그 열쇠의 내력을 말했다.
"하지만 이것을 어떻게 사용하면 된다는 것인지 전혀 짐작이 되지 않는다." "실버키...... 아니, 더 버티고였을까? 그는 지금 어디에?" 낸시가 물었다. "황당무계한 이야기일지 모르나...... 지난 번, 네오 사이타마에서 포탈을 통과했을 때 IRC 코토다마 공간 같은 장소를 지났네. 그곳에서 그와 마주쳤지."
IRC 코토다마 공간을 본 적 없는 간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한편, 일반인인 낸시 또한 포탈 짓수라는 기괴한 짓수와 IRC 코토다마 공간을 이성적으로 결합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회의실을 덮는 고요함. "......아슬아슬할 때까지 조사해보지. 하지만 의식은 맛따나시(미뤄지지 않음)야." 간도가 말했다.
"......알겠네. 조금이라도 자젠을 하게 해주게." 닌자 슬레이어는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떠났다. "......음료 같은 거라도 마실텐가?" 간도가 낸시에게 묻는다. "아이스 맛챠가 좋아요." "......있지, 낸시=상, 드디어 차분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군. 난 계속 예전부터 묻고 싶은 게 있었어......"
"프로포즈라면 늦지 않았는데요?" 낸시가 웃었다. 간도도 웃는다. "IRC 코토다마 공간 말이야. 해커들의 전설, 무한의 지평...... 그런 것이 정말로 존재하는건가?" "예스." "페케롯파 녀석들은 거기에 가면 죽은 사람과도 만날 수 있다고 하던데. 정말인가?" "예스 앤드 노. 모르는 것 투성이에요."
"어허어허어허, 그런 영문 모를 것에 댁들은 매일 다이브 하는거야!?" 간도가 감탄했다는 듯 웃었다. "그렇지요. 바다......" 낸시가 말했다. "인간은 아직 바다의 밑바닥까지 모두 알고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거죠." "해커라는 건 젠몬도(선문답)을 좋아하는 건가?"
"하지만 실제 그건 거기에 있고, 이용 가치가 있죠. 그러니 쓴다. 인터넷이나 IRC도 분명 이미 누구도 알지 못해요. 근본적인 원리, 어째서 작동되고 있는가, 같은 것은. Y2K로 모든 기반이 무너지고 전자전쟁이 최후의 일격을 찌른......" "드디어 젠몬도를 방불케 하는 이야기가 되었군." 여기에서 통신기가 울렸다.
"딥 스로트. 아아, 그래. 알겠다. 그 장소에서. 픽업하지." 간도가 수신기를 내려놓았다. "누구?" 낸시가 묻는다. "새로운 친구야." 간도가 대답했다. "전 자이바츠 닌자지. 이름은 디플로마트=상. 우리 작전에 가담해. 그 녀석이 싫은 내색을 하지 않으면 좋겠는데......"
......후지키도 켄지는 다다미 두 장 넓이의 작은 방에 앉아서 동쪽에 세워진 벽을 향해 정좌하고 있었다. 챠도 호흡으로 정신 통일을 도모한다. 벽에 붙어 있는 것은 그 절반 이상이 불타고, 피가 스미고, 찢어지고, 너덜너덜해진 사진. 사랑하는 아내 후유코, 아직 어린 토치노키, 그리고 사라리맨 시절의 후지키도.
고향 네오 사이타마와 처자식의 묘지인 마루노우치 스고이타카이 빌딩에서 멀리 떨어져, 이 타향 땅 교토에서 싸우는 후지키도에게는 이 소박한 사진이야말로 예배당이었다. 언젠가 가족이 함께 가자고 했던 교토 리퍼블릭에 지금 자신만이 있다. 복수에 불타는 닌자가 되어.
"모든 것을 달성할 힘을, 마지막까지 모든 것을 달성할 힘을......" 그는 눈을 감고 두 손을 맞대며 비통한 기도를 올렸다. 은색 열쇠, 유카노, 간도, 낸시...... 그 밖에도 많은 고려할 사항이 있었지만, 자이바츠와의 최종 결전을 앞두고 잠시 후지키도 켄지는 그의 마음을 자신의 처자식을 향한 생각으로 채운 것이었다.......
[토비게리 버서스 앰니지어] 끝
N-FILES (설정 자료, 원작자 코멘터리)
자이바츠 섀도우 길드에 의해 붙잡힌 드래곤 유카노. 과연 자이바츠의 음모란? 그녀를 구할 방법은 있는 것인가? 그리고 드래곤 겐도소의 유족, 유카노 자신에게 숨겨진 비밀이란!? 저항해라, 유카노! 자신이 누구인지는 카라테가 알려줄 것이다! 메인 저자는 필립 N 모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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